"오늘은 김상옥 의사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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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배다현 기자 =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1890년 서울 동대문 효제동에서 출생한 김상옥 의사는 8살부터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도왔다. 


그는 17세가 될 무렵 기독교에 입교하고 동대문 교회 부설 신군야학교에 들어가 주경야독에 힘썼다. 


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하자 직접 동흥야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그는 배움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일찍이 깨어있었던 그는 1913년 경북에서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하고 당시 대부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상인들에 대항하며 국산품 장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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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선 데는 1919년 3·1운동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진 감동적인 독립 만세의 함성은 한 청년의 마음을 뜨겁게 달궜다. 


이후 김상옥은 청년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는 '혁신공보'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점차 평화적인 방법의 독립운동이 갖는 한계를 절감한 그는 무력 투쟁에 의한 독립 쟁취를 꿈꾸게 됐다. 


1920년 11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김 의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신익희, 이동휘, 조소앙 등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22년 12월 권총 4정과 탄환 800발을 가슴에 품은 채 돌아와 거사를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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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폭탄이 투척된 건물은 일부가 파손되고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폭탄을 던진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일본 경찰은 며칠에 걸쳐 장본인을 알아내려고 은신처를 추적한 결과, 종로구 효제동에서 의열단원 김상옥이 은신 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김상옥을 붙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두 손에 권총을 쥐고 3시간 반 동안이나 대총격전을 벌이며 일본 경찰들과 맞섰다.


김상옥은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맞서다가 마지막 탄환 한 발을 가슴에 겨누고 벽에 기댄 채 자결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영화 속 독립운동가 4인최근 한국 영화에 등장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며 잊혀져서도 안된다.


94년 전 오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한 김상옥 의사 순국한 날1923년 1월 22일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던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배다현 기자 dahyeo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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