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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조선 시대 '천재' 6명

조선 시대 에는 1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의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인사이트KBS2 '대왕세종'


[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1392년 건국된 조선은 1910년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무려 518년이나 지속됐다.


단일 성씨 왕조가 500년 이상 지속된 경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나라가 운영된 덕에 조선은 학문·예술·과학·기술 등 다방면에서 꽃을 피웠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조선이 배출한 인재 중에는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1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조선이 낳은 걸출한 인재들 중에는 누가 있는지 아래의 목록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자.


1. 신숙주(申叔舟)


인사이트TV조선 '박종인의 땅의 역사'


조선 전기 문신이자 언어학자, 외교관이었던 신숙주(申叔舟)는 우리에게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 창제에 기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어학 부분에 있어서는 가히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로 중국어와 몽골어는 물론 여진어, 일본어까지 구사했다.


당시 조선과 교류했던 나라들의 언어를 거의 다 할 줄 알았던 셈이다.


인사이트KBS1 '역사저널 그날'


신숙주는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일궈냈다.


일본으로 파견 갔을 때에는 군사적 요충지는 물론 일본의 관제, 풍속, 신하들의 족계 등을 일일이 기록했다. 일본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신숙주가 기록한 자료들은 그의 저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의 바탕이 됐다. '해동제국기'는 후대 외교관들의 대일외교 지침서가 됐다. 


2. 이이(李珥)


인사이트연합뉴스


'5천원', '신사임당', '이기일원론' 등 율곡 이이(李珥)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많다. 그만큼 대중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특히 이이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능력을 드러낸 인물로 유명한데,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소년 천재'라 할 수 있다.


이이는 한 번도 어렵다는 장원급제를 무려 9번이나 했다고 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다.


13살에 진사(進士)에 합격한 이래 29세에 대과(大科)에 급제하기까지 총 9번 장원급제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23세 때 별시(別試) 답안으로 제출한 천도책(天道策)은 중국에까지 전해져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3. 이순신(李舜臣)


인사이트연합뉴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중 하나다.


임진왜란 당시 참전했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해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은 '거룩한 영웅' 즉 '성웅(聖雄)'으로 불린다.


이순신은 평소 전쟁사를 비롯한 역사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손자병법(孫子兵法) 등 병법서를 탐독하며 전략·전술을 익혔다.


인사이트학익진 전법 / KBS1 '불멸의 이순신'


인사이트명량해전 당시 거친 물살을 자랑했던 울돌목 / EBS '다큐 오늘'


한산도 대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패하게 만든 '학익진 전법'과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의 사례는 이순신이 평소 연구했던 것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뛰어난 전략·전술은 노력으로만 완성된 게 아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소규모 전투경험밖에 없었던 이순신이 대규모 전쟁에서 전승을 일궈낸 것은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명장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순신은 군사적인 부분 외에 문인으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데, 그가 지은 한시 '한산도가(閑山島歌)'는 문학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4. 김홍도(金弘道)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조선 후기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는 '씨름', '무동' 등 서민 생활을 독창적으로 담아낸 풍속화로 유명하다.


특히 김홍도의 풍속화는 실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홍도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와 인물화, 동물화는 물론 불화와 판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걸작을 남겼다. 장르를 아우르는 미술 천재였던 것이다.


인사이트단원 김홍도의 작품 '씨름' / 온라인 커뮤니티


김홍도는 비교적 이른 나이서부터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10대 후반에는 그림 솜씨가 매우 뛰어나야 가능한 '도화서 화원'이 됐고, 불과 28세에 어용화사(御容畵師)로 발탁돼 영조의 어진을 그렸다. 


용화사는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당대 화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데, 김홍도는 영조와 정조 2대에 걸쳐서 이 같은 영예를 누렸다.


5. 정약용(丁若鏞)


인사이트연합뉴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은 실학은 물론 저술, 공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정약용의 저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박학다식한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토지제도 및 조세제도 개혁 방향을 담은 '경세유표'(經世遺表), 관리들이 지켜야 할 지침이 담긴 '목민심서(牧民心書)', 형법을 다룬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그의 대표 저서들이 증거다.


인사이트거중기 / 연합뉴스


또한 정약용은 기존의 양반 사대부들이 잘 알지 못했던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임업이나 어류와 관련한 저서도 저술했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정약용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문·이과를 아우르는 천재다.


정약용의 발명품이자 수원 화성 건축에도 이용된 거중기를 그의 이과적 능력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6. 김정희(金正喜)


인사이트연합뉴스


조선 후기 문신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서예와 그림, 금석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천재였다.


특히 예서체와 행서체에서 경지를 이룩한 김정희는 그의 호를 딴 추사체(秋史體)를 창조했다.


추사체는 강렬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주는 서체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추종했다.


인사이트추사체 / tvN '동네의 사생활'


김정희는 뛰어난 서예가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 금석학 연구를 정립한 위대한 학자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신라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는 김정희가 1816년에 발견하고 판독한 것이다.


그 밖에도 김정희는 일체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필선과 먹빛만으로 완성한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 등 훌륭한 미술작품도 남겼다.


인사이트완당세한도 / 연합뉴스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성 소수자 왕·왕족 5명우리의 역사 속에도 성 소수자는 시대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존재해왔다.


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