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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촛불집회에 청와대에 앉아 웃고 있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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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박소윤 기자 = 지난 19일 제4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은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촛불들로 온통 일렁였다. 계속되는 발길에 내자동 로터리를 가로지른 폴리스 라인이 무너졌다.


시민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하나된 목소리로 "질서! 질서!"를 연호했고 잠시 부산스러워졌던 거리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들의 자발적인 외침이 놀랍고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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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마다 청년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 노인 심지어 강아지까지 손에 손을 잡고 광장을 찾는다. 평화시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집회가 끝나면 '성숙한 시민의식', '100만 촛불 빛났다' 등 민주시민을 성찬하는 언론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어느새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 시위만이 유일한 답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조금의 충돌도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 주에 걸친 집회에도 두 눈과 두 귀를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이런다고 대통령이 신경은 쓸까?", "정말 바뀌는 게 있을까?" 


죄없는 국민들만 점점 지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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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쯤에서 '선진적인 평화시위'라는 것이 마냥 옳은 것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예전부터 지배 계급은 민중을 누르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평화 시위를 이용해 왔다. 매국노 이완용은 3.1 운동 당시 "폭력 시위는 법과 원칙으로 엄중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통제 가능한 국민을 원한다. '비폭력 코르셋'을 입은 시민들은 다루기 쉬운 탓이다.


역사적인 변혁을 이끌어낸 시위는 모두 어느 정도의 '물리력'이 동반됐다. 우리나라의 4·19혁명, 6월 민주항쟁이 그랬다.


지난 5월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동법 개정안 반대 시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이·성별·민족을 불문하고 프랑스 파리 나시옹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최루탄을 던지는 경찰에 맞서 일제히 화염병을 날리며 "복종을 거부하라"고 외쳤다.


국가와 정부가 피지배층을 무서워한 이유, 시위가 위협적일 수 있었던 이유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지금 당장 차벽을 무너뜨리고 의경에게 주먹을 휘두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시민들 스스로 강박 관념 수준의 '프레임'에 갇혀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조차 속으로 삭혀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가 왔다.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이 법을 어기고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상황에 '착한 시민'들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목 터져라 소리쳐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물리적 충돌이 생길 경우 투쟁의 의미가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시위대는 폭도로 몰리고 정치적 사안은 뒷전이 될 것이다. '누가, 어떻게, 얼마나' 다쳤는지만이 도마에 오르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국민은 지금 상황이 더더욱 혼란스럽다. 비폭력시위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과 더 이상의 평화는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무섭도록 닮아있다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려 보자.


당시 온갖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권력을 유지했던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기까지는 무려 '2년 4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우리 국민들은 지지부진한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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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고의적으로 법률을 위반해 부당한 법률과 정부에 대항하는 '시민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대학교, 공기업 등의 동맹휴업과 납세 의무 거부부터 현수막 걸기, 스티커 붙이기 등 크고 작은 거부와 불복종 행위 또한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시민운동이 어떤 형태로 진행되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심에 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들을 그저 '착한 시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온순한 백성'으로 치부하며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모 국회의원의 말이 무색하게도 촛불은 거대한 '횃불'이 되어 일렁이고 있다. 국민들은 언제라도 횃불을 집어던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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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6일)로 벌써 다섯 번째, 200만 민중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첫 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모인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따르기 위해 발 맞춰 행진한다. 


단단히 여민 옷깃만큼 그들의 마음가짐 또한 굳세다. 거센 바람을 가르고 성난 촛불 민심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언제나 그랬듯 최종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조금 더 화내도 좋다.


박소윤 기자 sos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