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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7일)은 독립운동에 '5조원' 바친 이회영 선생의 탄생일입니다

150년 전 오늘은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의 재산을 팔아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우당 이회영 선생이 탄생한 날이다.

인사이트우당 이회영 선생, 우당기념관 / 이회영 선생 흉상, 연합뉴스


[인사이트] 문지영 기자 =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한 것이다"


150년 전 오늘은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의 재산을 팔아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우당 이회영 선생이 탄생한 날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할 만큼 명문가 출신이며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거부였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 주권을 빼앗기자 우당은 여섯 형제와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들의 전 재산인 약 5조원(현재 화폐가치 기준, 당시 약 40만원)을 쾌척하며 만주로 향했다.


그리고 우당은 그곳에서 전 재산을 투입해 독립군 양성기관인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인사이트우당 이회영 선생, 우당기념관 / 이회영 선생 흉상, 연합뉴스


우당은 신흥강습소에서 10년간 3천500여 명의 항일 전사를 길러냈다. 이 전사들은 청산리·봉오동 등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우당의 가족은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이 강습소의 학비와 전투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충당했다.


그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기 위해 만주로 향하다 다롄(大連) 항에서 일본 경찰에 잡힌 뒤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당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독립운동가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리는 우당 가문에 큰 빚을 졌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1길 20 서울 YMCA 앞에는 우당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