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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소설 속 ‘민법 착오론’
오 헨리 소설 속 ‘민법 착오론’
조우성 · 12/13/2016 01:40PM

인사이트gettyimages


내일은 크리스마스.


가난한 델리는 남편인 짐에게 멋있는 선물을 하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델리가 몇 달동안 모든 돈은 고작 1달러 87센트.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자랑거리인 화려한 금발을 길게 늘어뜨렸다. 주위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금발 머리결. 가난한 델리의 자존심과 같은 것. 하지만 사랑하는 짐의 선물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델리는 서둘러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다. 큰 마음을 먹고 20달러에 그녀의 머릿결을 팔았다. 그 후 두 시간동안 델리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짐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많은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짐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발견했다. 디자인이 산뜻한 손목시계 금줄. 짐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금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계는 훌륭했지만 낡은 가죽끈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짐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만 시계를 꺼내어 보곤 했는데, 델리는 항상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짐의 선물은 바로 이거야!’. 델리는 21달러를 주고 시계 금줄을 샀다.


집에 돌아온 짐은 델리의 짧아진 머리를 보고 한동안 아무런 말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짐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는 델리의 말을 듣고 짐은 사랑하는 아내 델리를 꼭 껴안았다.


짐이 외투에서 델리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자, 그제서야 델리는 남편이 왜 그런 표정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짐이 꺼낸 것은 델러가의 상점 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던, 값이 비싸 도저히 살 수 없었던 한 세트의 빗. 델리는 그 빗을 가슴에 꼭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제 머리는 곧 자라요. 짐!"


델리는 짐이 보는 앞에서 쥐고 있던 손을 열어 보였다. 금시계줄이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얼마동안 넣어두기로 합시다. 너무 고급이어서 지금 쓰기가 아까워요. 난 빗을 사기 위해 시계를 팔아 돈을 마련했거든. 자, 그럼 우리 식사나 하기로 할까?"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반전이 녹아나는 '크리스마스 선물'


미국 단편문학의 거장인 ‘오 헨리’의 유명한 작품인 <크리스마스 선물>은 분량은 짧지만 사랑하는 부부의 애틋한 감정을 반전과 함께 잘 녹여내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야기는 부부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끝을 맺고 있지만 짐으로서는 마음 한켠에 허탈함이 있지 않을까?


델리의 말대로 머리는 빨리 자란다고 하지만, 족히 6달 정도는 자신의 선물(머리빗)이 필요없을 것 같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보석상에서 예쁜 반지를 샀을 텐데...


인사이트gettyimages


부부의 선물, 계약 취소 가능할까


짐으로서는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구입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짐은 이를 이유로 머릿빗 가게에 가서 환불을 요구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점을 다루는 부분이 민법의 ‘착오(錯誤)’론이다.


착오. 어느 부분에 대해 착각, 판단미스를 했다는 의미이다.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의사표시의 착오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으나 본 사안과 관련 있는 것은 ‘동기(動機, motive)의 착오’다. 어떤 법률행위를 한 ‘이유, 동기’에 있어 착오를 일으킨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A는 식품공장을 짓기 위해 B로부터 땅을 샀다. 그런데 그 후 A가 구청을 통해 확인해 보니 그 지역에는 식품공장 허가가 나올 수 없었다. A는 당초 땅을 산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로서는 ‘식품공장을 짓기 위해 땅을 샀는데, 식품공장을 지을 수 없음이 드러났다면 이는 내가 이 땅을 산 동기에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동기에 착오를 일으켰다면 나는 민법 제109조에 따라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A 주장대로 계약이 취소된다면 그 계약의 효력은 소급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므로, A는 B에게 땅을 돌려주고, B는 A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런 경우 무조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것이 맞을까?


대부분 어떤 법률행위를 하는 ‘동기 그 자체’는 외부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대방은 그 사람의 동기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대법원도 ‘동기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려면 그 동기가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위 사례에서 A가 땅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B에게 충분히 설명을 한 등의 정황이 있어서, 결국 B로서는 A가 땅을 사는 이유를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점이 입증되어야만 A는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짐의 사례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짐이 머리빗을 산 동기는 무엇인가. 델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델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버렸기에 앞으로 당분간은 그 선물이 필요가 없다. 결국 짐으로서는 그 선물을 구입한 ‘동기’에 있어 착오를 일으킨 것(머리빗 선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그것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상황)이다.


짐은 그 머릿빗을 환불하기 위해 그 가게로 간다. 가게 주인은 톰이라고 가정해보자.


짐 : 사장님, 죄송합니다만, 이 머릿빗 좀 환불해 주십시오.


톰 : 왜 그러시죠? 제품에 하자가 있나요?


짐 : 아뇨, 그건 아닌데, 제가 필요 없는 걸 샀습니다. 제 와이프인 델리의 긴 머릿결에 어울릴 빗인데, 알고 봤더니 델리가 제 선물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지 뭐예요? 그러니 제가 이 물건을 살 동기, 이유가 없는데, 잘못 알고 사버린 것입니다. 민법에 보면 착오의 경우 취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톰 : (화를 내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이 그 빗을 사면서 언제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소? 당신은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이 빗의 가격을 물어보고 그 다음에 가격을 치르고 사지 않았소?


짐 : 물론 그렇게 하긴 했지만...


톰 : 나는 법을 잘 모르지만 당신 주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소. 난 당신 요구에 응할 수 없소이다.


톰의 말이 맞다. 짐은 머릿빗을 사면서 자신이 머릿빗을 사는 동기에 대해 전혀 설명한 바가 없다. 그렇다면 그 동기는 계약의 내용에 편입되지 않았으므로, 설사 짐이 동기에 착오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매매계약을 뒤에 취소한다는 주장은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거래 상대방인 톰의 입장에서는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다. 상대방(짐)의 구체적인 사정을 알면 알수록 나중에 그 사정이 바뀔 경우 거래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동기의 착오 관련된 법적 분쟁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분쟁에서 핵심은 일방 당사자의 구체적인 동기(계약이유)를 상대방이 알고 있었느냐를 밝히는 데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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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효용 극대화 위해서는 선물 보다 '현금'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물건으로 선물을 주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효용극대화 관점에서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선물보다 현금을 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본인이고, 선물교환의 핵심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안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교환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현금으로 줘야 한다.


하지만 선물은 반드시 효용의 의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하는데, 연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엔진오일 교환권을 준다고 해서 과연 감동하겠는가. 효용을 뛰어 넘는 감동의 의미가 선물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짐은 자기에게 소중한 금시계를 팔았다. 왜? 델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머릿결을 돋보이게 할 머릿빗을 사기 위해서.


델리는 자존심의 상징인 머릿결을 팔았다. 왜? 짐이 소중히 여기는 금시계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 <크리스마스 선물>은 상대를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마음 자체가 소중한 선물임을 어느 부부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데 그 미덕이 있는 작품이다.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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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기업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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