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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전문의… 가슴 속 이야기
암 전문의… 가슴 속 이야기
박종훈 · 10/18/2016 04:45PM

인사이트gettyimages


의사 생활을 한지도 어언 20년이 훨씬 넘었다. 이제는 머리카락도 제법 흰머리가 대세일 정도다. 동기 의사들이 수술할 때 시야가 잘 안 보인다고, 노안이 왔다고 할 때도 나는 괜찮아서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앞에 놓인 소주병의 자잘한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이상하다 했는데 안경 벗고 다시 보라는 동기들 말대로 해보니 더 잘 보인다. 영락없는 노안이다. 


생각해보니 수술실이 요즘 좀 어둡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노안의 영향이라고 한다. 나이 먹었다고 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도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나이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사진 찍자고 하면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드디어 제자들이 주례를 서달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헛웃음이 난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아무튼 오십에 들어서니 이래저래 생각도 많아진다. 자서전을 낼 나이는 아니고 그만한 위치의 사람도 아니지만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되고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의사로 산다는 것

 

남들은 내 직업이 무척 보람 있는 것이라면서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환자와 보호자들도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그럴 때 마다 ‘보람 있나?’ 라는 생각을 한다. 


치료가 잘 돼서 잘 사는 환자분들을 보면 흐뭇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보람 있는 직업이야. 선택 너무 잘했어’ 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직업 가운데 기관사가 있는데 그 이유는 매일 기차를 몰면서 바라보는 자연풍경이 얼마나 멋질까? 라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그것도 매일 보다 보면 지겹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에 만족스러운 직업은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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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의사가 된 것은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도 어려우니 의사가 돼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의과대학에 원서를 낸 것이 이유의 전부다.

 

그러니 뭐 애당초 대단한 보람도 사명감도 크게 있을 리가 없다. 때로는 보람은커녕 치료가 잘못되었다고 항의하는 분들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하고 왜 했나 하는 후회스러운 직업일 뿐이다.


푸념 같지만 아마 의사라는 직업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스트레스 때문에 의사들이 술을 가까이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심지어 피를 보는 외과 의사들은 피비린내를 가시기 위해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도 있다고 한다.

 

보람과 사명감으로 충만하지 않다고 해서 환자를 대충 치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환자 한 환자가 소중하고 나름 열성을 다해서 진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런 질문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시니컬해진 것은 전공이 정형외과 가운데 ‘종양학’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다른 정형외과 의사들과 달리 암 환자가 주 대상이다 보니 보람을 찾기보다 저세상으로 보낸 환자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깊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교수님이 당신이 수술했는데 병원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 환자들을 치료가 잘 된 그룹으로 분류해서 논문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른 전공의 의사들이 다시 자기에게 오지 않는 것을 문제가 없으니까 오지 않는 것이라는 식으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비해 내 경우는 다르다.

 

내 환자들은 반드시 문제가 있건 없건 다시 온다. 그런데 다시 안 온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내가 밝은 마음으로 보람을 갖고 이 일을 하기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전문인으로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언젠가 유명한 스님의 인생에 관한 법문을 듣고 난 후 스스로에게 너무 놀랐다. 


함께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참 좋은 법문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다. 삶에 대해서 무척이나 덤덤한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심드렁해지고 인생에 대해서는 시니컬해졌다. 이렇다 보니 심지어는 건강 강좌에 가서 한다는 소리가 너무 오래 살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소리나 하게 되었다. 


병을 치료해야 할 사람이 운명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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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며

 

암과 관련된 책은 너무도 많다. 서점에 가서 건강 코너의 진열대에 놓여있는 책들을 보면 암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사례담을 엮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성공한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이런 책들을 잘 읽지도 않고 환자들이 그런 책들을 보기를 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암을 극복한 경우는 많은 암 환자 가운데 소수이거나 또는 본인에게는 심각한 암이었지만 평균적으로 완치가 잘 되는 암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을 보다 보면 내 환자들은 상당수가 암을 이기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내 환자들은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결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암은 노력만으로 극복되지는 않는다. 암이란 것이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고 무엇을 가리는 등의 노력을 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노력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은 될 수 있을 수 있어도 분명한 것은 음식을 가려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완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책에 보면 그렇게들 말한다.

 

암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그리고 치료하기도 버거운데 극복하지 못하면 부지런 하지 못한 나의 책임처럼 느껴질 수 있는 책들의 범람 속에서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다 남보다 조금 일찍 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때로는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써 보았다.

 

명대로 살지 못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암을 극복한 분들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치료받고 남보다 먼저 가신 분들의 이야기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나는 환자들이 있다. 가슴에 묻어두고 말 일들인데 언젠가부터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암을 극복한 분들의 영광에는 못 미칠 지언즉 성실했던 삶은 절대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암은 정말 교활하다. 그래서 암 치료는 때로는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누가 이기나 보자고 달려드는 것 같은 암. 전쟁터 같은 상황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 자신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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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안암병원 국제진료센터장
기획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