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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지켜낸 것은 국가가 아닌 '전형필' 선생이었다

'훈민정음'을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온갖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끝끝내 지켜낸 데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있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인사이트] 성보미 기자 = "나라 말싸미 중국과 달라..."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배포한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이 '훈민정음'을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온갖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끝끝내 지켜낸 데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있었다.


그는 일제가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을 자행하던 당시, 일본군보다 먼저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내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나섰다.


당시 일본은 해례본을 없앰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뿌리와 기원을 흔들으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간송 전형필 선생은 수소문 끝에 조선 출신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례본을 가지고 있는 자를 일본보다 먼저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해례본을 얻기 위해 소유자를 찾아낸 그는 "1천원에 판매하겠다"는 판매자의 말에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서 10배의 값을 치렀다.


이때 선생이 건넨 1만원이라는 금액은 요즘으로 치면 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이처럼 훈민정음을 지키려는 전형필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글의 상형원리, 제자원리 등 한글의 핵심적 가치와 의미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것은 단순한 서적이 아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유산이자 우리의 얼과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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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간송 전형필 선생은 가슴에 훈민정음을 품고 피난길에 올랐다.


6.25 전쟁 당시 선생은 잠들 때에도 훈민정음을 베개 삼아 잤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가 가슴에 품고 베개에 숨기며 지켜낸 훈민정음은 마침내 세상에 알려져, 1962년 12월 국보 제 70호에 지정되었으며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편 '훈민정음'의 또다른 편인 '상주본'의 소유자는 지난해 "1천억을 받으면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뜻을 밝혀 논란을 일으킨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