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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지키는데 근무 6시간만 인정…학교경비원 '노예계약'

하루 종일 일해도 100만원 밖에 못 받는 학교 경비원들의 '현대판 노예 계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지난 21일 오후, 온종일 학생과 교사들로 북적거렸던 충북 모 중학교 건물 내부.


복도 사이에 난 건물 유리창으로 도심 속 고층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내뿜는 화려한 불빛이 내려앉았다.


그 사이로 이 학교의 유일한 파수꾼인 A(70)씨가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학교경비원'인 그는 교실 곳곳을 돌아보며 시설 중에 고장 나거나 잘못된 게 없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가끔 교실 창문이 열려있으면 닫아주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며 순찰을 하던 그는 외부인이 교내로 들어오자 바짝 긴장했다.


배드민턴 동호회원으로, 운동하기 위해 학교 강당에 간다는 말을 듣고서야 경계를 풀었다.


그는 "3년 전 새벽에 보안업체가 설치한 비상벨이 울려서 확인하러 갔더니 5명이 물건을 훔치려고 교실에 침입하고 있었다"며 "소리치며 쫓아갔더니 금방 달아났다. 경찰에 신고해 다행히 범인들을 잡았지만, 그때 이후로 낯선 사람을 보면 잔뜩 경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교내를 순찰하다 보면 족히 1시간 남짓 걸린다.


학교 강당에서 배드민턴 동호회원들이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순찰을 끝내고, 학교가 텅 빈 것을 확인한 늦은 밤이 돼서야 9㎡ 남짓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지만 마음 놓고 깊은 잠에 빠지지는 못한다. 새벽에 오는 우유 배달차나 가끔 오작동으로 새벽에 울리는 보안 벨 소리에 번번이 잠이 깬다. 평일에는 교직원이 퇴근했다 출근하면서 학교가 비는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 30분까지, 휴일이나 국경일에는 24시간 꼬박 학교를 지키는 이런 일상이 365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된다.


2013년 3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한 이후로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주말이나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이렇게 일을 해 그가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이 채 안된다.


올해 최저 시급인 6천30원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최소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은 받아야 하지만 지난달 그의 월급명세서에는 101만 4천450원이 찍혀있었다.


항목별로는 기본급 97만830원에 식대 없이 연차수당 3만9천850원이 추가된 게 전부다.


여기서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받는 월급은 98만1천380원이다. 한 달 내내 주말도 없이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한 대가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A씨의 급여 체계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A씨의 급여 산출 명세서를 살펴보면 평일과 주말에 각각 15시간, 24시간씩 학교에서 지내도록 시간이 짜여 있었다.


그런데도 A씨의 근무시간은 고작 평일 5시간, 주말 6시간밖에 인정을 못 받았다. 나머지 학교에서 지내는 평일 10시간과 주말 19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규정했다.


하루를 꼬박 학교에 묶여 있지만, 오전 8시 30분부터 30분을 근무하면 1∼2시간씩을 쉬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오후 10시부터 8시간 동안 취침시간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잠을 자며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야근을 하는 셈이다.


A씨는 "학교를 벗어나 있는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이 온종일 학교에 매여있어야 한다"며 "올해 추석 연휴 때도 추석 당일 제사를 지내려고 집에 다녀온 5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학교를 지켰다"고 말했다.


'현대판 노예'와 같은 불합리한 계약이지만 항의할 수도 없다. 공연히 불만을 털어놨다가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나마 일흔의 나이인 그를 받아주는 것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A씨는 "명절이나 휴가 때만이라도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쉬고 싶은 게 소원이지만 잘못 이야기했다가 눈 밖에 나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뺏길까 봐 아무 말도 못한다"고 했다.


A씨와 같은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는 학교 경비원 사례는 민간투자방식(BTL)으로 지어져 운영되는 학교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BTL 방식으로 운영되는 학교는 충북에만 초·중·고등학교를 합쳐 15곳이 있다.


도교육청은 학교의 시설과 경비를 관리하는 운영업체 2곳에 매년 190억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관리운영업체가 임금 단가를 줄이기 위해 비상식적인 부당한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BTL방식은 민간이 자금을 투자해 학교 건물을 지으면 교육청이 해당 업체들에 관리·운영비 및 임대료 명목으로 장기간에 걸쳐 학교 건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런 구조다보니 민간 업체들이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인건비를 줄이려 하는데 가장 만만하고 힘 없는 학교 경비원이 재물이 되기 일쑤다.


민주노총 충북본부 관계자는 "BTL방식 학교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며 "경비원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북교육청이 이들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북도교육청은 "관리 업체와 학교 경비원 사이에 자율적으로 맺은 계약이기 때문에 제3자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민간투자방식은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더는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투자방식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초·중·고등학교를 포함해 15곳이 있다.


현재 도교육청은 민간투자방식으로 지어진 학교의 시설과 경비를 관리하는 운영사 2곳에 매해 190억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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