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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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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을 아느뇨?

 

사람이란 그런 것 같다. 어딘가가 아프거나 불편하면 그쪽 방면으로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이러저러한 정보를 얻게 되니 시간이 지나면 반 의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이 방면으로 반 의사가 되었다는 말씀은 아니고 그저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정리를 해보니 ‘잘 먹어주는 것 말고는 없도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생각해보라. 약을 먹지 않겠다고 했으니 밥 말고는 무엇으로 내 몸을 다독거리겠는가.

 

그동안 쌀에 현미랑 잡곡을 섞어 먹는 걸 완전히 현미밥으로 바꿨다. 현미밥이 좀 거친 걸 생각해 찰현미를 먹을까 했는데 모두들 현미를 권했다. 


누구는 현미차만으로도 암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암튼 이제부터 밥은 현미밥이다. 대부분 현미는 불려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게 번거로워 물을 쌀밥 할 때보다 넉넉히 넣는다. 


그럼 의외로 푹 퍼져 맛있게 된다. 밥통을 열었을 때 쌀눈이 톡톡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면 절로 쌀밥에 대한 미련이 싹 사라진다.

 

금식을 하고 난 다음 날 나는 현미차를 끓이고 난 뒤 주전자에 있던 불은 현미를 한 번 더 끓여 첫날 끼니로 먹어주었다. 


이틀 비어있던 위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 일주일은 몸에게 말을 걸고 몸이 하는 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니, 밥 기운을 넣어줄 때도 예의를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똑똑, 이제 음식물이 들어갈 거야…’. 볶은 현미라 그런지 다시 끓여도 생각보다 탱글탱글한 게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경쾌하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는 현미밥을 지어 조금씩 양을 늘려갔다.

 

대신 아주 오래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반찬하고 밥을 같이 먹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반찬이랑 먹으면 꿀꺽하고 바로 넘어가니 말이다. 급한 성격은 특히나 더 밥 따로 반찬 따로.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서른 번씩 씹어라.’ 근데 현미밥은 오십 번쯤 씹어야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정신 차려야 한다. 하나 둘 셋.......

 

인사이트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 스스로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치유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사진=엄윤진


그리고 채소들.

 

알레르기를 난 몸과 마음의 독소라고 판결(?)을 내렸으므로 일단 과도한 단백질은 삼가기로 마음먹었다. 


고기, 생선, 우유, 달걀 등을 빼고 나니 나한테 남는 것들은 잎 푸른 채소와 뿌리채소들이다. 내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채소들이 오이, 가지, 양배추, 호박, 버섯 등이다.

 

그리고 한창 나올 때 말려둔 표고버섯은 나의 주 찬거리가 되었으며 물론 감자도 없어서는 아니 된다.


반찬으로도 먹고 간식으로 쪄서도 먹고 전도 부쳐 먹고 하니 감자야말로 내게 있어 거의 완전식품이라고나 할까, 그랬다.

 

암튼 시골에 와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왜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였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도시 어느 슈퍼에서 비닐하우스를 의지해 철 덜 든 애들을 때 이르게 먹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내 몸이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쓱 건네주시던 토마토 하나에 매달려 있던 초여름 자락이 입안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들어왔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내가 밟고 다니는 땅의 힘과 바람과 햇살, 비의 힘으로 길러진 푸른 채소들이 장날 할머니들 바구니에 소복하니 담겨 내게 온 것들을 소중히 씻어 최소한의 조리를 했다.

 

그리고 두세 가지의 찬을 준비하는 것. 그게 즐거운 이유는 부엌에 있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게 했다는 데에도 있었다.

 

음, 초간단 자연밥상이군.

 

보식 첫째 날

 

양배추랑 파프리카 빨강과 노랑을 준비했다. 양배추는 채 썰듯 썰어 물에 한 번 헹궈서는 채반에 건져두고 파프리카도 씨를 빼서는 곱게 채 썰었다. 


그리고 접시에 양배추를 올리고 파프리카를 마치 고명 얹듯 올렸다.

 

소스는 말이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집 간장이랑 감식초, 그리고 매실엑기스로 만들었다. 집 간장으로 소스를 만들게 되면 의외로 깔끔한 맛이 된다.


양배추는 위에 아주 좋은 채소다. 특히 날것으로 먹을 때 그 효과가 뛰어나단다. 그래서 이틀 비운 위를 위해 양배추 샐러드를 먹어 주기로 했다.

 

익혀서 먹게 되면 단맛이 나는데 어렸을 때 나는 익힌 양배추의 흐물거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입맛도 변하는지 마른 찬보다는 촉촉한 나물 반찬에 손이 가는 것처럼 양배추 볶음도 즐겨 먹게 되는 것 같다.

 

양배추를 볶을때는 올리브유를 좀 넉넉히 두르고 채를 썬 양배추를 넣는다. 이때 당근도 같이 채 썰어 넣으면 좋다. 


대신 숨이 살짝 죽을 정도로만 볶은 뒤 소금 간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를 준비했다.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한입 크기로 잘라 올리브 오일에 살짝 볶아 소금 간을 해서 먹기로 한 거다.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라 생으로 먹거나 대부분 데쳐서 먹는데 나는 주로 올리브 오일에 볶아서 먹는 쪽을 택했다. 


일부러라도 올리브 오일을 먹어주는데 이렇게 볶음을 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항산화 오일을 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몸에 다시 음식이 들어가는 걸 나는 전과는 달리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늘 습관처럼 다이어트와 연관 짓던 음식 조절을 잊어버리기로 말이다. 


그저 내 몸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하기로 한 거다. 그러다 보니 음식의 재료를 떠올렸을 때 내가 무거운 이미지 또는 가벼운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어딘가 불편해진다는 것은 대부분 혈액순환과 관련된 문제다. 그러니 맑고 가벼운 음식들을 취하고 싶은 게 당연한 거다. 


단지 그동안 습관 때문에 자꾸 예전의 먹거리로 돌아가서 그렇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린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내가 멍때림이라는 단어를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에까지 끌어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바로 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채기 시작한 때문일 거다.

 

나의 멍때림 사흘째 날, 끓인 현미죽과 양배추,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의 초록으로 내 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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