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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로 보는 경매 인사이트(Insight)
소더비로 보는 경매 인사이트(Insight)
김승민 · 08/16/2016 10:58AM

인사이트gettyimages


영국 런던에 소재한 세계적 경매사 소더비(Sotheby’s) 인턴 시절이었던 2002년, 그때 가장 '핫' 했던 부서는 인상파(impressionism) 부서였다.

 

당시에 거래된 최고가 예술품 상위 10위 중 절반 이상이 모두 인상파 작품들이었으니, 이미 1980년대 이래 상한가를 날렸던 인상파 작품 판매가의 잇따른 최고가 갱신은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괴리감을 주었던 것은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하더라도 -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확연히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고매한 순수예술을 표방하는 웬만한 미술관에서도 한 폭이 1억 달러에 팔린 반 고흐의 수선화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을 앞다투어 홍보하는 풍경이 빚어졌다.


인상파에 대한 신격화 작업 덕분이었을까, 기업형 작품 사냥과 언론의 관심 속에 결국 많은 관객의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그러한 인상파를 비롯한 근대화의 최고 인기에 이의와 도전장을 제기하기 쉽지 않았던 그 당시, 필자는 논문으로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부상에 대한 논문을 썼다.

 

연구활동에 협조한 옥션하우스와 아트신문사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비중 있는 공감을 얻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인상파의 아성이 한창일 때 아트 시장의 점진적인 변화 속 20세기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한 동시대 예술의 부상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인상파 미술이 상징하는 근대미술의 대세는 어느덧 포스트모더니스트 세계의 깃발을 든 동시대 미술로 세대교체를 했다.

 

이는 미술시장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었다. 일반 대중 또한 국립미술관의 유화작품 앞에서의 심미적 감동을 넘어서 거대한 스펙터클이자 전위적 충격가치(shock value)를 선사하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 “터빈 홀” 속 거대한 공공미술작품을 보며 열광했다.


인사이트영국 런던에 위치한 테이트모던(Tate Modern) 미술관 내 터빈 홀(Turbine Hall)/gettyimages


2월 5일 런던 소더비에서 진행된 인상파와 초현실주의 작품 경매는 여러 가지로 현재 미술시장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십여 년 전보다는 훨씬 차분하게 개최 된 인상파 그림 경매였지만 이틀간의 경매는 21억5천8백만 파운드(약 3조 7,700백억원)을 기록했고 이는 총액상 역대 소더비 런던에서 열린 어떠한 경매도 능가한 최고금액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명화들의 총출동이었다. 카밀 피사로, 파블로 피카소, 알버토 자코메티, 피에르 보나드, 조르지오 드 키리코 등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향연이었다.

 

각 작품당 기록 또한 화려했다. 인상파 화가 카밀 피사로의 1897년 작품 “몽마르트 블루부아의 봄”은 피사로 작품 사상 최고가액 2천만 파운드(약 35억원)에 낙찰됐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1천7백만 파운드(약 29억원)로 예상가의 두 배를 기록했다. 


쉐라의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폴 개티 미술관이 매입하기도 하였다.

 

오후 경매와 저녁 경매로 장장 10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경매에서 출품된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박물관에 전시해도 손색이 없는 ‘museum-quality’ 최고 품질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작품의 라인업은 또 다른 이면을 내포하고 있다. 무슨 이유이건, 좀처럼 구경하기도 힘든 이 작품들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사이트당시 한화로 약 203억원에 낙찰된 '금송아지(The Golden Calf)'는 대형 수조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채우고 상어, 사슴 등 동물을 박제해 넣은 허스트의 연작 중 하나다./gettyimages 


즉 웬만하면 살 엄두가 나지 않는 최고가의 작품들, 더구나 귀하고 가격이 중요하지 않았던 인상파였기에 많은 전문가가 의아해했음 직하다.

 

반대로 또한 최저 20억원이 시작가인 이러한 작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개인콜랙터와 기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들 대부분은 아시아를 포함한 이른바 이머징마켓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입증하듯 본 경매는 44국에 분포한 구매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단순히 액면가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미술시장.

 

무릇 몇년 전의 사건이 생각났다. 지난 2008년 9월 역사적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경매가 있던 런던 소더비 경매장, 그날은 바로 국제금융 위기의 시발점이 된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한 날이었다.

 

미국의 유명금융사의 파산은 도미노처럼 전 세계에 충격을 가하며 다가올 경기침체의 먹구름을 상징했지만 정작 당일 소더비의 경매는 마치 딴 세상 일처럼 성공적이었다. 


더 나아가 실존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경매소에서 직접 매매하고 기록적인 경매가에 팔아버리는 도발적인 사건이었다.


미술시장은 금융의 버블이 꺼짐에도 끄떡없다는 당당한 인상을 얼마간 남겼지만 결국 경기침체의 한파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번의 근대적 ‘올드마스터’ 작품 경매의 시사점은 그야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들의 영속성이다.

 

이번 경매의 성공은 정말로 소유하고 싶고(개인이든 기관이든) 역사와 시대의 큰 획을 그었던 명작들에 대한 가치 산정이 늘 우리들의 형이상학적 상식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해학적 경고로 다가온다.

 

다만 현존하는 가장 우아한 ‘아사리판’에서 부대끼는 주체들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바뀌고 사라진다는 자명함만이 불변할까.

 

어쩌면 수십 년 간 일본 대기업의 손에 묵혀 있었던 명작들이 새 주인을 찾아가듯, 다음의 여정이 어디로 향할지 사뭇 궁금할 뿐이다.

 


 

김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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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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