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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질투할 때
남자가 질투할 때
전해웅 · 08/09/2016 11:47AM


인사이트gettyimeages 베르사유궁전 


남자는 언제 질투하는가?


프랑스 파리 근처의 보 르 비콩트 성(Chateau de Vaux-le-Vicomte)이라고 들어보셨는지?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코스로 유명하지만 보 르 비콩트라는 이름의 이 성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이름부터가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별로 들어보지도 못한 이 성이 중소 귀족의 자그마한 성이겠거니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성의 건축과 정원조경 양식은 17세기 이후 유럽 전체의 절대 군주 궁전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은 자신의 신하가 지은 이 성에 대한 질투심의 산물이자, 일종의 표절작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남자의 질투심 = 서열의 상징

 

1641년, 파리의 의회 의원이 된 약관 26세의 니콜라 푸케는 파리에서 55킬로 떨어진 곳에 작은 보 르 비콩트라는 영지를 구입하는데, 16년 후인 1657년 루이 16세의 재무 총감독관이 된 그는 다음 해인 1658년부터 3년에 걸쳐 거대한 정원이 딸린 성을 짓는다.

 

높은 예술 감식안을 가졌고 예술 애호가였던 푸케는 건축가 루이 르 보에게 설계를 맡기고 정원의 설계와 조경은 앙드레 르 노트르, 장식에는 화가 샤를르 르 브룅 등 당대 최고의 장인들에게 작업을 맡겼다.

 

특히 정원을 맡은 르 노트르는 이른바 프랑스식 정원이라 불리는 정원의 양식을 창안해 낸 정원 조경의 최고 전문가이다. 


정원의 길이가 3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성을 짓기 위해 3개의 마을을 구입하여 철거해야 했고, 그 마을들에서 이주해야 했던 사람들이 정원 관리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성의 건설에는 18,000명의 인력과 1600만 리브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1661년 8월 17일에 열린 개장 행사에는 몰리에르의 연극이 공연되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졌으며 초대 인원만 6천명에 이르렀던 이날 파티의 호화로운 음식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호화롭고 아름다운 성과 정원에서 벌어진 이 날의 행사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했으며 푸케는 단숨에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성이 완성된 날은 푸케의 인생에 최고의 정점인 동시에 바닥 없는 추락이 시작된 날이었다. 


인사이트gettyimages 베르사유설계도  


왕궁보다 더한 호화로운 성과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개장식은 루이 14세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왕은 개장 행사 직후 푸케의 체포를 명했다. 


푸케는 새로 건설되는 성의 주요 부분에 왕을 위한 거처도 마련했고 화려한 파티도 왕의 환심을 사고자 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든 호화스런 성과 파티는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루이 14세는 국민의 세금을 횡령한 죄목을 씌워 푸케를 투옥하고 막 새로 지은 성과 기물들은 압수해 버렸다.


 푸케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푸케의 친구였던 시인 라퐁텐은 성 개장식을 계기로 극적으로 바뀐 푸케의 신세를 빗대어 “8월 17일 저녁 6시에 푸케는 프랑스의 왕이었으나 다음날 새벽 2시엔 그는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고 표현했다.

 

푸케가 성을 지은 돈은 정말 그가 세금에서 횡령한 돈에서 나왔을까? 이것은 분명하지 않다. 


그의 후임이자 정적인 콜베르는 그를 부패의 죄목으로 고발했지만, 푸케는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본래 부유했다는 점에서 횡령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인사이트gettyimages 보르 비콩트 성 


그리고 루이 14세가 그를 투옥하도록 만든 죄는 실은 횡령의 죄가 아니라 ‘서열을 무시한 죄’이리라.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회에서의 서열이 번식의 기회와 자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많은 사회성 포유류 동물들에게 있어 높은 서열은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사슴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은 알파 수컷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다른 수컷들과 싸우는 것이다.

 

남자의 질투심은 서열의 상징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사춘기 남학생들이 어른들이 보기엔 그리 멋져 보이지도 않는 ‘학교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 흘리며 싸우는 것도 포유류 수컷의 오랜 진화의 흔적일 것이다.


보 르 비콩트, 알면 더 잘 보인다

 

라퐁텐과 몰리에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유했던 푸케의 예술적 안목은 상당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가 성과 정원의 건설에 기용한 장인들은 정말 최고였다. 확실히 보 르 비콩트 성의 정원은 규모나 화려함에서는 베르사유 궁의 경쟁상대가 못 된다.

 

하지만 과도한 장식과 비현실적인 규모의 베르사이유 궁이 ‘다듬어지지 않은 진주’ 같다면 군더더기 없는 기하학적 구성과 차분함이 돋보이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정원은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의 이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푸케는 정말로 자신의 화려한 성에서 왕을 위한 멋진 연회를 베풀면 왕이 기뻐하리라 생각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푸케의 정치적 감각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인사이트gettyimages 보르 비콩트 성 


그에게 보 르 비콩트 성은 그의 예술적 안목의 상징이었지만 루이 14세에게 이 성은 루이 왕 자신의 서열에 대한 도전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루이 14세는 푸케를 투옥한 후에는 보 르 비콩트 성의 건설에 참여한 루이 르 보, 앙드레 르 보트르, 르 브룅 이 세 사람을 그대로 기용하여 파리 근교의 습지인 베르사이유에 푸케가 세운 성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화려한 성을 짓도록 한다. 


그 규모와 장식은 도를 넘어 지나칠 정도인데, 마치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잘 봐라. 누가 이 나라의 왕인지를! 이 나라의 서열 제 1인자가 누구인지를!"

 

베르사이유 궁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실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궁전은 벼락부자 집처럼 지나친 장식으로 뒤덮여 있고, 정원은 지나치게 크고 복잡해서 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랬다면 다음번에 프랑스를 방문할 때엔 파리에서 쉽게 갈 수 있는 보 르 비콩트(Chateau de Vaux-le Vicomte) 성을 방문해 보길 권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사조가 고전주의이고 프랑스 정원은 고전주의적 이상을 표현한다. 


프랑스 정원에서는 세모뿔, 원통 등의 모양으로 일정한 크기로 재단된 나무들이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추어 서 있는 이유이다.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호수와 분수, 운하와 정돈된 수목과 직선 도로들이 이루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정원에서 로노트르가 창안한 프랑스식 정원의 정수를 음미할 수 있다. 


넓지만 베르사유와는 달리 한가로운 정원을 거닐며, 사람이 사치를 멀리하고 겸손할 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 것은 즐거움에 더해지는 덤이다. 

전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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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사업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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