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1 (토)
  • 서울 20 °C
  • 인천 20 °C
  • 춘천 11 °C
  • 강릉 19 °C
  • 수원 20 °C
  • 청주 19 °C
  • 대전 17 °C
  • 전주 21 °C
  • 광주 22 °C
  • 대구 21 °C
  • 부산 23 °C
  • 제주 23 °C
사회

'땡겨쓰는 사회'와 '시간의 사채업'

인사이트에너지 음료 '레드불'. gettyimages


핫식스, 레드불과 같은 '에너지 사채(私債)' 음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일반 음료보다 카페인 함량이 월등히 높아 마시고 나면 밤을 하얗게 불태울 수 있지만 그 다음날에는 기진맥진하기 때문에 "내일 에너지를 미리 끌어다 쓴다"는 의미로 위와 같이 불리고 있다.


내일의 에너지를 땡겨 쓰는 현대인


오늘의 사회는 이러한 기상천외한 표현을 유희적으로 만들어 내는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위의 표현을 다르게 풀어쓰면, 우리는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내일의 몸에 '빚'을 지는 셈이다.


이러한 섬뜩한 언어유희를 목도하며 드는 생각은 이 사회에 빚이 얼마나 만연해 있으며, 또 빚의 구조와 생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땡겨 쓰는' 사회를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월 각종 고지서를 받아볼 때마다 '땡겨 쓰기'의 일상화를 절감하게 된다. 


예컨대 8월 한 달간 사용한 핸드폰 요금은 9월 말에 지불하게 된다. 8월 초에 긁은 카드 값은 9월 초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9월의 소득을 8월에 미리 땡겨 쓰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 사용요금,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요금에 이르기까지 땡겨 쓰는 구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지불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인사이트gettyimages


시간의 '고리대금업'


땡겨 쓰는 구조 아래서는 당장 급한 것은 막아둔 현재에 안주하는 동시에, 그것을 곧 청산해야 할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과거는? 지급한 과거와 지급하지 못한 과거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시간 구조 또한 더 이상 단순히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탄력적으로 끌어오는 고무줄과 같은 시간이 된다. 


다 끌어와 늘어난 고무줄은 과거의 영역에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고무줄의 탄성은 그것을 유지하는 힘을 잃는 순간 어딘가로 튕겨 나가 버린다. 


때문에 그러한 탄성을 유지하며 돌아가는 사회는 항상 뻣뻣하게 긴장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나간 것은 돌아볼 새가 없다.


과거의 잔해를 침착하게 뒤적거리는 몸짓을 우리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것은 너무 많이 긁어 하얗게 쌓인 영수증 더미를 성급히 찢어 버리는 몸짓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이처럼 미래는 현재를 위해 유보하거나, 혹은 현재를 위해 성급히 호출하는 일종의 ‘유동자산’처럼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과격한 유동성은 반성적 성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거는 폐기물처럼 버려지고, 현재는 영원히 답보 상태에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유희적으로 명명하자면 '시간의 고리대금업' 정도가 되어야 할까?


그 속에 거의 모두가 포박되어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작명인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