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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얼' 못 들게 하는 사회

인사이트gettyimagesbank


박근영 문화와 심리학 

 

꾸미지 않은 민낯은 사람마다 같고도 다르다. 


어린아이의 민낯은 한결같이 해맑다. 유아는 자신의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민낯의 같은 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개인의 민낯은 천차만별이다. 타고난 꼴과 경험적 세월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민낯의 다른 점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개인은 제 민낯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이러한 관심은 일차적으로는 외모에서 나타난다. 이로부터 ‘예쁘다-안 예쁘다, 잘생겼다-못생겼다’는 구분이 생긴다. 


잘생기면 숭배하고 못생기면 경멸한다. 외모에 따른 우열과 가산점이라는 공모는 사회화와 함께 일어난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선남선녀 연예인에게 엘프, 요정, 여신, 외계인과 같은 초월적 수식어를 흔히 붙이는 것이 외모 숭배의 일례다. 


이는 외모의 아름다움을 신화화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그런데 이 경배에 최근 추가된 규칙이 있다. 


화장이나 사진보정 혹은 의료기술 덕분이 아니어야 더욱 열광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직찍, 민낯공개, 모태미녀 등의 검색어를 클릭하는 이유다.

 

민낯에도 서열이 있다

 

그런데 민낯이라고 다 같은 맨얼굴이 아니다. 예쁘거나 잘생긴 것만을 따지는 것은 단순한 것에 불과하다. 


남의 눈에 띄려고 노력하는 민낯보다는 남이 알아봐야 하는 민낯이 한 수 위다. 알아봐야 하는 민낯은 역학관계에서 나온다.


사회적으로 힘이 더 센 상위 서열자는 알아 봐야만하는 얼굴이다. 

 

예를 들어 왕조시대에 용안을 못 알아보는 것은 신하의 불충이지 왕의 외모 탓이 아니었다. 


어느 시대든 지배자의 초상화는 실물과 관계없이 위엄 있다. 


왕이 아니더라도 생존을 쥔 평가자나 권력자는 알아봐야 할 얼굴이다. 회사원이라면 얼핏 지나가는 CEO의 얼굴을 빨리 알아봐야 한다.


식당을 하는 사람이라면 잠행하는 미슐랭 가이드 평가자의 얼굴을 알아보고자 열망한다. 


드러내지 않거나 숨어있어도 알아봐 주는 민낯이야말로 힘의 상징이요, 선망의 대상인 셈이다.

 

그러나 신화적 외모나 숨길만한 권력이 없는 다수의 성인들은 민낯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지 혹은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는지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개 남녀를 불문하고 보습제나 자외선 차단제 같은 화장품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BB크림 종류를 사용해서 윤기 나는 가짜 민낯을 만들고자 한다.


광택이 나는 민낯을 부러워하고 가짜 민낯을 만들어서라도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가히 민낯 콤플렉스라 할 만하다.


민낯이라는 피부자아는 여러 가지 보완 도구를 차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자의 가장, 남자의 시계, 청소년의 스마트 폰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 


인사이트‘민낯 콤플렉스’의 굴레에서 오프라 윈프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gettyimages


오프라 윈프리, 고급상점에서 쫓겨나다


사실 민낯 콤플렉스가 개인 탓만은 아니다. 2013년도 7월에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가 고급 상점에서 물건을 보지 못하고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의 전년도 수입은 850억 원이었다. 그러나 상점 종업원은 흑인인 윈프리의 허름한 외모만을 보고 “당신에게 너무 비싼 곳”이라고 말해서 돌려보냈다.


윈프리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당시 나에게는 ‘나 돈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줄 어떤 표지도 없었다.


다이아몬드도 없지, 수표책도 들지 않았지, 루이뷔통 구두도 신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생긴 그대로 어느 상점에나 가서 ‘저것 좀 보고 싶은데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출처: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윈프리의 회상 내용은 현대인의 민낯 콤플렉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이 콤플렉스는 부분적으로 사회적 물리적 실체가 있다. 


윈프리만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세밑을 코앞에 둔 많은 사람들이 올 한 해 동안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편안한 민낯으로 공공장소나 쇼핑몰에 갔다가 괜히 눈치만 보고 돌아왔을 수도 있다. 


요즘은 산에 갈 때조차도 알만한 등산복이라는 드레스 코드가 있으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도 민낯으로는 어렵게 됐다.


마스크를 벗으면 보이는 진짜 얼굴


우선 외관으로 인한 차별이 명확할 때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이다. 


이러한 차별을 개선하는 과정은 앞에서 인용한 오프라 윈프리가 출연한 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 흑인인권운동사의 주요 사건들이 모두 나오는 영화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 심성에 대한 기본적 반성이 없는 한 민낯 콤플렉스를 유발하는 다양한 피상적 인격판단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낯을 판단하는 기준을 피부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가져가야 진짜 변화가 생긴다. 


남이 알아봐 주는 민낯보다 한 수 위에는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는 진짜 민낯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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