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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범' 육군 소위 안두희의 소름돋는 진실 5가지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를 맞이해 '암살범' 안두희에 대한 소름돋는 충격적인 진실을 정리해봤다.

인사이트

연합뉴스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67년 전인 1949년 6월 26일 민족 독립과 통일에 힘쓴 백범 김구 선생은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 암살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두희는 육군형무소에 갇혔지만 1년 7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났다.


김구 암살 배후에 실력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가운데 안두희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을 위해 서거한 날을 맞이해 암살범 안두희에 대한 소름돋는 충격적인 진실을 정리해봤다.


1. 안두희는 1년 7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나 육군 대위로 전역했다


인사이트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 / 연합뉴스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육군형무소에 갇혔으지만 그해 11월 15년, 이듬해 3월 다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1951년에 잔형을 면제받고 대위로 전역했다. 그리고 1953년 2월 15일에 완전 복권되었다.


2. 제대한 안두희는 군납 사업 등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


인사이트안두희 생전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안두희는 제대한 뒤 군납 공장 등을 운영하며 적잖은 큰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잇단 테러와 위협 때문에 이사를 자주갔고 미국 이민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3. 김구 선생 암살 배후 조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4.19혁명 이후 진행됐다


인사이트이승만 대통령과 기자회견하고 있는 안두희 / 연합뉴스


1992년 안두희는 범행 직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고, 김창룡으로부터 김구 살해를 지시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았던 안두희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4.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추적한 이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었다


인사이트테러당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 연합뉴스


1961년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 김용희는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하고 검찰에 넘겼다.


1965년에는 백범 독서회장 곽태영으로부터 칼로 목을 찔리기도 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5. 안두희가 죗값을 받는데 무려 4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인사이트안두희를 살해한 버스기사 박기서 / 연합뉴스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을 암살한 죗값을 받는데까지 4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