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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노벨문학상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사망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의 세계적 작가 귄터 그라스가 항구도시인 뤼베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귄터 그라스가 2002년 5월 29일 서울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노벨문학상(1999년)을 받은 독일의 세계적 작가 귄터 그라스가 항구도시인 뤼베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그의 이름을 딴 재단과 출판사가 13일(현지시간) 밝혔다. 향년 87세.


그라스는 국내에는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양철북'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폴란드 그다니스크로 불리는 단치히에서 1927년 태어난 그는 독일 전후 세대 문학 조류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식료품점을 하는 독일계와 슬라브계 부모 가정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17세 때 나치군(나치 친위대·Waffen SS)에 들어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력은 내내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문학계의 지성으로서 독일 국민들에게 나치 역사에 대한 직시와 반성을 앞장서 촉구하고 진보적 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라스는 2006년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에 자신의 나치 복무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고, 그를 위선자로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15세가 되던 해, 부모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잠수함 복무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이후 노동봉사자로 군부대 지원 업무를 하다 17세에 드레스덴에 주둔한 무장 나치 친위대 제10기갑사단으로 발령받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징집이냐, 자원이냐에서부터 그에게 부역 혐의를 지울 수 있느냐에 이르기까지 논란은 뜨거웠지만, 그는 자신의 비판적 작품과 진보적 정치행동을 통해 '몸'으로 말했다.

문학과 예술적 열정의 밑바탕은 전쟁 중 미군 포로가 됐다가 석방되고 나서부터 본격화했다. 잡부와 석공으로 일하다가 조각가가 되려고 뒤셀도르프 미술학교를 거쳐 1952년 베를린 예술대학으로 옮겨 수학했다.

문학계는 그가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고, 파리에서 조각과 그래픽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설 쓰기를 이어갔다고 전한다.

문학 수업과 역량의 축적은 1959년 나온 '양철북'으로 집약됐다. 이 작품은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반열로 그를 밀어올렸다. 노벨문학상까지 그에게 안긴 양철북은 197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귄터 그라스가 2002년 5월 29일 서울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양철북은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독일의 일그러진 역사를 주인공인 난쟁이 오스카 마체라트의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3살 되던 생일날 일부러 계단에서 떨어져 성장을 멈추기로 하고 양철북을 잡는다. 94cm 난쟁이에 불과하지만, 정신적으론 태어날 때부터 성인인 그다.

1952년 오스카가 정신병 요양소에 들어가 그의 가족의 역사, 자신의 고독한 학교시절, 단치히의 소시민적 세계, 전쟁과 전후 시대를 이른바 '개구리 시점'으로 회상한 자서전적 장편이다. 당대 문학계는 비정상적인 난쟁이의 눈에 비친 정상인들의 세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이채롭게 구성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어린애 같은 작은 키 때문에 성인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성인의 지성을 가졌기에 어린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오스카를 통해 전쟁과 전후 시대의 독일의 현실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라스는 그의 나치 복무 전력이 대중의 큰 배반감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을 만큼 시대의 지성으로서 정치적 행동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1960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핵무기 반대를 외치며 빌리 브란트 총리의 재선을 위한 시민운동을 이끄는가 하면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 소속 헬무트 콜의 낙선운동에도 나섰다.

2012년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발표한 '말해야만 하는 것'이란 제목의 시에서 "핵무기를 가진 이스라엘이 깨지기 쉬운 세계평화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일 말하면 너무 늦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썼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원죄'로 이스라엘 비판이 금기시 된 독일 사회에서 그의 목소리를 용감한 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앞서 2006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72차 국제펜클럽 대회 개막연설을 통해서는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비판하며 "미국의 범죄는 체계적이고 변함 없으며, 무자비하다. 마치 총을 찬미하면서 바이블을 들고 먼 나라까지 죽음을 나르는 성직자들과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일간 디 벨트가 2005년 '현존하는 독일인 중 최고의 인물' 조사 대상 후보군에도 그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 요슈카 피셔 전 외무장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콜 전 총리 등과 함께 거명됐다. 

단치히 3부작으로 불리는 '양철북'(59년), '고양이와 쥐'(61년), '개들의 시절'(63년) 외에 물고기를 화자로 등장시킨 '넙치'(79년)에서도 인간사회를 비판적 시선으로 그렸다.

'달팽이의 일기', '암쥐', '무당개구리의 울음', '광야', '나의 세기', '양파껍질 벗기기', '게걸음으로 가다', '텔크테에서의 만남', '라스트 댄스',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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