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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양심적 집총 거부자'가 국민 영웅이 된 사연

미국과 일본이 전쟁이 한창이던 때, 집총을 거부하면서도 미군에 자원입대한 데스먼드 도스는 전쟁에서 75명을 살린 공로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인사이트실제 데스먼드 도스 / YouTube 'MedalOfHonorBook'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총'을 들지 않고도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은 미군이 있다.


그것도 미국 내에서도 최고의 군인만 받을 수 있어 귀한 훈장으로 불리는 '명예훈장'을.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42년, 데스먼드 T. 도스(Desmond Thomas Doss)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소식을 들은 그는 바로 미 육군에 입대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였다는 점이다. 


재림교회 신자들은 계명에 따라 살인을 거부하는데, 도스는 살인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전쟁터의 군인이 되길 원했다.


인사이트영화 '핵소 고지' 스틸컷


다만 그는 의무 병과에 자원해 사람을 '죽이는 군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군인'이 되길 원했다.


도스는 총을 들지 않아도 전쟁터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군도 그의 종교를 인정해 총 없이도 전쟁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토요일이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훈련과 명령을 거부했지만, 환자가 있을 때면 안식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군인들을 돌보는 데 열중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에 뜻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영화 '핵소 고지' 스틸컷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도스는 의무병으로 미군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그러나 전투 중에 일본군의 공격으로 부대원 200명 중 10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부대 내 유일한 의무병이었던 도스는 후퇴하는 아군을 뒤로하고 적진으로 달려갔다. 쓰러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일본군의 기관총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도스는 쓰러진 동료를 확인하고 살아있는 동료가 있으면 둘러업고 아군 기지로 옮겼다.


일본군 참호 10m 앞까지 달려가 동료 7명을 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도스가 구한 미군의 수는 75명에 이르렀다.


그는 수류탄 파편에 맞아 다리를 다쳤음에도 다른 동료를 위해 들것에 실려 가길 거부했다. 


인사이트영화 '핵소 고지' 스틸컷


영웅과도 같은 도스의 이야기는 영화 '핵소 고지'로 되살아났다. 영화는 도스를 그려내며 신앙과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 일한 군인의 멋진 모습을 그려냈다.


이 영화는 도스의 모습을 통해 군인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살리기 위한 직업임을 깨닫게 한다.  


도스의 전쟁은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재림교회 신자 도스는 그 속에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