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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 나를 성폭행한 '악마'를 15년 만에 마주쳤다"

10살 때 1년간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15년 만에 마주친 가해자에 마침내 신고를 결심했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막 두려우니까 제가 어느 날 문을 잠그고 잤어요. 


근데 문을 잠그고 잤다고 혼난 거예요. 왜 문을 잠그고 잤느냐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문 잠그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열 살 소녀는 당시의 공포를 그렇게 떠올리고 있었다.


지난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하여'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자리에는 자신을 "약 한 달 전까지 형사 재판에 나섰던 성폭력 피해 당사자"라 밝힌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가 참석해 '성폭력 관련 체육계 전반의 신고 시스템'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1년 약 1년간 당시 코치에게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뽀뽀'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수위 높은 단어였던 어린 소녀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코치는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 혐의로 사직 처리됐고 다른 여러 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2016년, 김씨는 한 테니스 대회장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상대방은 선글라스를 끼고 버젓이 시합에 출전하는 모습이었다. 15년이 흐르고 나서야 김씨는 코치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당시 광주여성의전화, 해바라기센터,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4개 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도움을 준 기관은 광주여성의전화뿐이었다"고 밝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씨는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도 각각 신고 메일을 보냈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며칠이 지나도록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김씨는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한 기관 담당자는 김씨에게 이길 수도 없는 사건을 왜 다시 꺼내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김씨는 "혼자 고소를 준비하며 이들이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를 끊임없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외롭고 긴 싸움 끝에 결국 법원은 가해자 코치에게 징역 10년형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가해자의 상고심 항소는 기각됐고 지난 7월 코치는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처음 고소장을 작성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수도 없이 되새겨야 했던 지난 2년간 재판을 포기할까 많이도 고민했다는 김씨. 단 한 가지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내가 신고를 하지 않아 발생한 또 다른 피해의 책임이 내게도 있다"


김씨는 "'반드시 승소해서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사례를 만들겠다'는 다짐 하나로 시작한 일이기에 외로운 싸움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씨뿐 아니다. 국내 체육계에는 성폭력 문제가 만연하며 이를 은폐시키는 구조가 굳게 고착돼있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이에 대해 여성 체육 전문가들은 한국 체육계의 보수적·폐쇄적 분위기 하에선 애초에 여성 스포츠인들이 자기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리에 참석한 이병진 대한체육회 감사실장은 "대한체육회뿐만 아니라 국회, 정부 차원에서 협업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Naver TV 'SBS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