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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자존심 끝까지 지켜낸 '이우 왕자'에 대한 비밀 5가지

106년 전 오늘(20일) 태어나 '비운의 왕자', '조선의 마지막 황족' 등 쓸쓸한 수식어로 생을 마감한 이우 왕자의 가슴 아픈 인생사를 소개한다.

인사이트Youtube 'EBSCulture (EBS 교양)'


[인사이트] 김한솔 기자 = 고종은 열강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변경하면서 자주독립국가임을 선포했다.


하지만 단순히 국호변경만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막을 수는 없을 터. 결국 1910년 한일병탄조약으로 대한제국 황실은 무너지고 말았다.


무려 518년이나 이어졌던 조선왕조는 이렇게 끝을 맞이했다. 


망한 나라 황족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대다수는 일본인과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해야 했고, 때로는 억울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 중 조선의 마지막 왕자이자 고종의 손자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는 거의 전 생애를 일본의 볼모로 지내며 비참한 삶을 살았다. 


106년 전 오늘(20일) 태어나 '비운의 왕자', '조선의 마지막 황족' 등 쓸쓸한 수식어로 생을 마감한 이우 왕자의 가슴 아픈 인생사를 돌아보도록 하자.


1.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출중한 외모


인사이트황실황족성감


이우 왕자는 그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얼짱 왕자'로 불리며 이름을 알렸다.


진한 쌍꺼풀과 시원시원한 눈매로 여심을 단번에 사로잡는 것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콧날과 적당히 도톰한 입술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미남들과 견주어도 손색업을 정도.


이를 증명하듯 대한 제국의 실상을 다룬 영화 '덕혜옹주'에서 이우 왕자 역은 미남 배우 고수가 맡았다. 또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리더 수호 역시 이우 왕자의 닮은꼴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우 왕자의 빼어난 외모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2. 일제에 의해 '일본군'으로 키워졌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1926년 구 조선 왕족들은 만 18세가 되면 육군이나 해군에 무관으로 임관해야한다는 정책이 있었다.


이에 이우 왕자는 1922년 11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1926년 4월부터 일본육군 유년학교에 강제로 입교됐다.


유년학교에서 1929년까지 학업을 이어간 후 그해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또다시 강제로 입교됐다.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포병 소위로 임관해 도쿄에서 포병 장교로 근무했다. 


이는 일제가 조선 황족을 일본의 군인으로 임명해 일제 치하의 조선을 정당화하는 홍보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었다.


3. 일본인과의 정략결혼 거부하고 한국인과 결혼


인사이트황실황족성감


대한제국 황족 중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 왕자는 아버지를 닮아 호방한 기질을 가졌다고 한다.


일제는 덕혜옹주(德惠翁主)나 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처럼 이우 왕자를 일본인 귀족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으나, 이우 왕자는 이를 끝까지 거부했다.


민족의식이 강했던 이우 왕자는 일본인이 아닌 조선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박영효(朴泳孝)의 손녀 박찬주(朴贊珠)와 혼인을 해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다.


4.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사망


인사이트centerforthepublicdomain


1945년 6월 일제는 태평양전쟁이 격화되자 이우 왕자를 오늘날 중령계급으로 진급시킨 후 본토 결전을 위해 히로시마로 부임을 명령했다.


이우 왕자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는지, 부랴부랴 전역 신청을 하는 등 전쟁에 차출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1945년 7월부터 이우 왕자는 일본군 제2총군 참모본부로 출근하기 시작했고, 그로 부터 한 달 뒤인 8월 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트렸다.


부임지로 출근하다가 피폭당한 이우는 결국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 숨을 거뒀다.


5.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이우 왕자는 죽은 후에도 일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유족의 동의 없이 그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


야스쿠니 신사 측은 이우 왕자가 사망 당시 일본 국적이었다는 이유로 신으로 모시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 사실은 이우 왕자가 사망한 지 62년이 지난 2007년에서야 언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살아생전 그토록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우 왕자. 죽음 이후에도 일본 전범들과 합사돼 혼(魂)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