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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한국전쟁' 일으킬 뻔했던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나무 한 그루가 남북을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고, 미군 전체가 발칵 뒤집히며 '2차 한국전쟁'을 예고하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인사이트(좌) 온라인 커뮤니티, (우) 위키백과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모든 이야기는 '미루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한다.


그 나무 한 그루는 남북을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고, 미군 전체가 발칵 뒤집히며 '2차 한국전쟁'을 예고하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시계를 42년 전으로 돌려보자.


인사이트위키백과


△ 분노의 미루나무


1976년 8월 18일, 주한미군 장교들은 공동경비구역 초소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미루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미루나무가 초소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것이다.


시야 확보를 위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에 나선 미군 장교들에게 북한군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군사분계선으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공동경비' 구역이었다. 같은 공간에 남북,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루나무 한 그루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북한의 박철 중위가 다가왔다.


"작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미군 장교들은 이 말을 무시하고 작업을 이어나갔고, 결국 박철 중위의 "죽여!"라는 명령과 함께 그 자리에 피가 낭자하기 시작했다.


북한군들은 UN군 장병들을 무차별 폭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땅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집어 아서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를 머리를 찍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크 배럿(Mark T. Barret) 중위까지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했다.


인사이트위키백과


△ 작전명 폴 버니언(Operation Paul Bunyan) : 미루나무를 잘라라


순식간에 장교 2명을 잃은 UN군은 이성을 잃었다.


조지프 스틸웰(Joseph Warren Stilwell)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데프콘 3를 발동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더이상 미국의 위신이 깎여선 안 된다"라며 처절하게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명분이 약했다. 이 사건만으로 전면전을 일으킬 경우 당시 소련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다.


결국 미국은 판문점 사건의 단초였던 '미루나무'를 자르기로 결심한다.


지원병력의 감시 아래에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이때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전쟁을 일으키자는 작전이었다.


작전명은 '폴 버니언'. 이 작전이 실행되면서 문제의 미루나무 주변에 대규모 병력이 투입된다.


한미 양국군의 호송차량 23대, 미군 공병대원 16명, 이들을 호위하는 미군 1개 경비소대와 64명의 한국군 특전사 부대가 동원됐다.


상공에는 미군 헬기 20대를 포함, 코브라 공격용 헬기, B-52 폭격기, F-111 전폭기가 등장했다.


해상에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휴전선 인근에는 한국군 보병과 기갑부대, 포병들이 대기했다.


인사이트위키백과


△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우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당장 내 전투화를 가져와라"


당시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지시를 내려 육군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로 구성된 64명의 결사대를 조직한다.


또한 미국 측이 폴 버니언 작전을 수행할 때 미루나무 근처에 제1보병사단 수색대가 매복해 북한군의 동향을 살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반격의 기회를 포착해 북한과 전쟁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북한의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인사이트MBC 뉴스


△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줘라


당시 북한의 후계자였던 김정일은 미국에게 절대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같이 말했다.


"미군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하지만 잘못된 발언이었다. 이 말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넘어 물불을 가리지 못한 북한군들이 결국 판문점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미국이 움직이자 그때서야 심각성을 깨달은 김일성.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했냐"라고 따졌다.


이에 김정일은 "미군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도발이었다. 저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라고 변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반도는 살얼음판이 됐다. 이성을 잃고 칼을 빼든 남한과 미국, 강 건너 불구경하는 소련과 중국. 북한은 궁지에 몰린 쥐였다.


결국 김일성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유명을 표명했고, 미국이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판문점 도끼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 판문점에는 콘크리트로 확실하게 나뉘어진 남북 경계가 생기게 됐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그때 북한 측이 조금도 자세를 굽히지 않았더라면 2차 한국전쟁, 아니 3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