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돕다 고문당해 숨진 아버지 뒤이어 역사 치부 파헤치는데 평생 바친 일본인

인사이트EBS1 '지식채널e'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당신은 국가의 적이다! 비(非)국민이다!"


쏟아지는 협박과 비난에 백발의 일본인은 대답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도 들었던 말이다"


지난 14일 EBS1는 자신을 비(非)국민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일본인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하야시 에이다이의 끝나지 않은 기록'을 방영했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피해 실상을 취재해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다. 50년에 걸쳐 한평생 역사의 진실을 집요하게 좇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자료가 공개될 수 있었던 것도 하야시 덕분이었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학살, 자살특공대 등과 관련 살면서 총 57권의 책을 펴낸 하야시는 항상 협박 전화와 살해위협에 시달렸지만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인사이트EBS1 '하야시 에이다이의 끝나지 않은 기록'


그는 왜 기록하는가.


어린 시절 하야시는 "'국민이 아닌 자'의 자식"이라 불렸다.


하야시가 성장한 곳은 후쿠오카 탄광지대였다. 그곳에서 하야시의 아버지는 신사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하야시가 13살 소년이었을 때였다. 전쟁 물자 공수를 위해 석탄 생산량을 늘려야 했던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 식민지 조선의 노동자들을 강제로 연행해왔다.


어느 날 탄광 노동자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배고픔과 극심한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신사에 숨어들었다. 자기 나라의 비인간적 행태를 목도한 하야시의 아버지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광부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먹을 것을 준비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왔다.


이후 일본 경찰에 발각된 아버지는 그대로 끌려가 조선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고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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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다짐한 아들은 자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국이 저지른 비인간적 참상에 대해 참회를 시작했다. 하야시가 역사의 흔적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다.


지난해 9월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하기 직전까지도 하야시는 '지금 아니면 쓸 수 없다'는 생각에 만년필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에 테이프로 붙여가며 글을 썼다.


그리고 생애를 바쳐 발로 뛰며 모아온 역사적 사료 6천여 점을 한국의 국가기록원에 기증하고 떠났다.


생전 하야시 에이다이는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있다고 했다.


1945년 8월, 부친이 탈출을 도왔던 조선인 광부들이 해방을 맞은 고향에 돌아가기 전 다시 찾아왔다. "고맙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이었을 10엔을 건넸다. 


하야시는 말했다. "이 돈이 저의 유일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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