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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쁨에 취했던 '광복의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독립운동가들

광복절을 맞아 조국이 해방된 순간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들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인사이트KBS 


[인사이트] 장경윤 기자 =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을 알리는 방송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마침내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갖가지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었던 독립운동가들 또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광복의 날,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이 있었다.


오늘(15일) 광복절을 맞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조국이 해방되던 날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사이트KBS 


해당 글에서 사용된 자료는 2011년 방영된 KBS '3.1절 특집다큐-서대문형무소 비밀의 기록을 찾다'의 일부 내용이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독립운동가 이병호 선생은 광복이 이루어지던 해 서대문형무소에서 겪었던 일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정치범으로 수용됐던 이병호 선생과 동료들은 일본이 곧 망할 것이란 소문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일제는 그런 소문이 퍼지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더욱 엄하게 통제했다.


인사이트


인사이트KBS 


그러던 중 8월 15일 오후, 일제는 갑자기 죄수들에게 가한 통제를 모두 해제했다.


그리고 곧 라디오에서는 일왕의 항복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순간 사람들은 조국 해방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랐다.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이 형무소 강당에 올라가 "일본이 망했다. 항복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마침내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16일 형무소는 정치범으로 수용됐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석방했다.


형무소 정문 앞에서 이들을 기다렸던 시민들은 모두 두 팔을 번쩍 들며 열렬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인사이트


인사이트KBS 


그런데 형무소를 나온 이병호 선생은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 형무소에서 총성 소리가 여러 번 들려옴을 느꼈다.


왜 이렇게 소리가 많이 들리냐며 물어본 이병호 선생은 "오늘은 사형이 많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다.


이는 아직 형무소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기 직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병호 선생은 이 같은 일화를 소개하며 희생자들에 대한 비통스러운 마음과 잔악한 일제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인사이트KBS 


그러나 당시에 있었던 사형 집행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황.


또한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 400명의 사람들 중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겨우 165명에 불과했다.


광복을 맞은 지 어언 73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난날의 슬픔을 잊어버린다면, 나라를 위해 희생하다 이름조차 알 수 없게 된 순국선열들의 넋은 영영 어둠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