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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35도 폭염에도 등골 오싹하게 만드는 본격 좀비 소설 '시인장의 살인'

거의 한 달간 이어지며 한반도를 '불반도'로 만들고 있는 더위를 날려버릴 오싹한 좀비 소설이 등장했다.

인사이트엘릭시르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습기가 온몸에 쩍쩍 들러붙었다.


목욕탕에 냉탕이 있고, 온탕이 있다면 폭염 속 에어컨 없는 세상은 '습기탕'이라 이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때 생각나는 것은 입안에 넣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빙수와 생각만 해도 시원한 워터파크, 온몸에 소름 돋게 만드는 공포영화 등이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종이 에어컨'이라고도 불리는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더운 여름날 읽는 추리소설은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땀이 식는 것은 물론이고 오한을 동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부산행'


최근 번역 출간된 '시인장의 살인' 또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소설 중 한 권이다.


신코 대학교 미스터리 애호회의 단 둘뿐인 회원 아케치 쿄스케와 히무라 유즈루는 여름을 맞아 뭔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같은 학교 영화 연구회의 MT에 따라가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출중한 추리 실력과 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겐자키 하루코의 '덤'으로 MT에 합류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기어코 합류한 MT는 결국 비극의 시작이 됐다.


저녁식사 이후 벌어진 담력시험에서 갑자기 나타난 좀비를 만났기 때문.


별장으로 피한 상태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희생 당한 것은 물론 1층부터 점차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좀비와 내부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으로 주인공들은 '밀실'에 갇히게 된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접속 무비월드'


본격 추리소설을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좀비'란 신선함을 뛰어넘어 살짝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본격 추리소설이라 함은 트릭 풀이를 중심으로 고도의 두뇌게임을 즐기는 미스터리가 중심이다.


장치와 시간 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미스터리에 웬 뇌 없이 오로지 본능으로 움직이는 좀비란 말인가.


투박하기 그지없는 좀비라는 소재는 밀실 속 첫 번째 희생자의 시체 주변에 놓인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라는 두 장의 쪽지로 세련된 트릭으로 변신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좀비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 보이고 어떻게 보면 무생물로 취급 가능하다.


작가 아마무라 마사히로는 '좀비'라는 소재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이중 밀실' 구조를 완벽히 직조해 독자에게 머리털 쭈뼛 서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부산행'


'시인장의 살인' 속 좀비는 영화 '부산행'에서 기차 속을 떼로 몰려다니던 섬뜩한 얼굴들을 떠오르게 한다.


비극적인 접촉에 의해 인간이 아니게 된 그들은 단순한 눈속임에 넘어가 무조건 앞으로 향하는 기척이 예민한 일부 동물들보다 지능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향한다는 맹목적이지만 반복적이고 강력한 운동능력으로 인해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미스터리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다.


돈과 성공 혹은 욕망을 향해 미친 듯이 한 가지 궤적만을 반복해 그리게 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주변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살아있는 좀비가 되었는지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살인 동기를 떠올려 보자. 


분명 심장을 쿡쿡 찌르는 서늘한 진실이 눈을 크게 뜨고 독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