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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소년과 여인, 20살 나이 차의 발달장애인 두 사람을 접하며 우리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인지 되돌아본다.

인사이트(좌) 푸른숲, (우) 우드스톡


[인사이트] 이하영 기자 = "으꺄꺄꺄" 얼마 전 제주도의 한 수목원에서 들은 소리다. 


소리를 낸 이는 키도 덩치도 딱 성인 남자 사이즈인데 소년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내가 만난 그는 발달장애인일 것이다. 발달장애는 신체와 정신이 고르게 성장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20살 몸에 4살 정신을 가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린 연령일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영화 '말아톤'의 실존 인물 배형진씨나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존 인물 엄기봉씨가 있다. 


신기록을 여러번 경신하며 미국의 사랑을 받은 수영선수 펠프스 또한 발달장애를 겪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발달장애를 겪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한다. 


나 또한 올해 현실에서 단 한 명의 발달장애 소년을 봤고 책으로는 단 두 명을 만났을 뿐이다.


인사이트Youtube '취재대행소왱'


책으로 만난 발달장애인들은 직접보다는 한 다리 거쳐 다른 사람의 필터로 만났다고 해야 옳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서는 저자 류승연씨를 통해 생활 연령으론 8살을 갓 넘기고 정신 연령이 2살쯤 되는 2009년생 10살 아들 동현이를 첫 번째로 만났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발달 장애 동생을 둔 걱정 많은 둘째언니이자 '어른이 되면'의 저자 정혜영씨의 흥 많은 30살 동생 혜정씨다. 


20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현이와 혜정씨는 공통점이 꽤 많다. 


말이 어눌하고, 지나치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잘 웃는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두 명의 발달 장애 소년과 여인이 주변 사람들을 참 많이 웃게 한다는 것이다. 


매번 인상만 쓰고 있는 장애가족은 드라마나 영화 속 아니면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질 나쁜 상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사이트푸른숲


그런데 이들이 실제 겪는 상황을 돌아보면 우울함 감도는 내 상상이 전혀 현실감 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류승연씨는 아들이 제대로 말하고, 물건을 사는 간단한 산수 등의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치료실 전쟁을 치렀다. 


아들이 비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하게 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동현이와 같은 반이 된 친구들과 부모들에게 전하는 구구절절한 편지도 여러 장 쓴다. 


하루의 모든 부분을 아이에게 쏟아부으면서도 자기 일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 어느새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다.



인사이트텀블벅


정혜영씨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엄마가 아닌 언니이기 때문이다. 


18년간 선택하지도 않은 장애 보호 시설에서 고통받던 동생이 너무 가여워 정혜영씨는 혜정씨 탈시설을 결정지었다. 


문제는 일하면서 동생을 돌볼 수 없다는 것. 


딱 6개월만, 아니 6개월이라도 동생과 살고 싶은 소망을 담아 정혜영씨는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텀블벅에 도움을 요청한다. 


혜정씨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세상에 알리기로 한 언니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펀딩이 목표치에 최종 성공했을 때 정혜영씨는 '우리 이야기도 필요해'란 말이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전한다.


인사이트우드스톡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말미에는 저자의 아는 후배가 울면서 전화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아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것.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마음이 답답할 때 우는 게 때로 약이 되기도 한다. 


두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장애 복지 정책은 정말 '우는 것'밖에 답이 없구나 한 번 더 느꼈다. 


동사무소의 전담 공무원은 정책을 모르기 일쑤고 그게 아니면 동정적인 눈길로 매뉴얼을 읊을 뿐이다. 


장애인 인권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두 권의 책으로 돌아본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은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비장애인 또한 언제든 사고를 당하면 금세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하나, 둘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 미래가 영 불투명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변했다면 이미 세상은 한뼘만큼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