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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제강점기 '마지막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20대 청년들입니다"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당시 조선의 20대 청년들은 마지막까지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의 의지를 불살랐다.

인사이트(좌)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우) 부민관 폭파의거터 /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서울 한복판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있었다.  


때는 일본의 패색이 점점 짙어져 가던 1945년 7월 오늘(24일), 이미 태평양의 모든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한 일본에게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수많은 조선과 일본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아까운 목숨만을 잃어갈 뿐. 


그러나, 친일파들의 부일 행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 친일파였던 박춘금은 전쟁에서의 일본의 선전을 기원하며 '아시아민족 분격 대회'라는 것을 준비했다.


인사이트일본에서 국회의원이 된 후의 박춘금 / SHOWA Day by Day Vol.3


일본이 패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여겨졌으나, 슬프게도 조선인은 끝까지 희생을 요구받아야 했다.   


심지어 친일파들의 매국 행위와 반민족적 발언도 끊이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위해 끝까지 조국을 팔아넘기려는 친일파들은 우리 민족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20대의 젊은 청년이었던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도 마찬가지였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친일 정치 깡패 박춘금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그들이 세운 계획은 '아시아민족 분격 대회' 행사가 열리는 '부민관'을 폭파하는 것.


서울 수색변전소 공사장에 발파 인부로 위장 잠입한 유만수는 이곳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몰래 빼내 2개의 사제 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뜻을 함께하기로 한 세 사람은 행사가 치러지기 전날 밤, 행사장 뒤편의 화장실에 사제폭탄을 몰래 설치하였다. 


인사이트독립기념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찾아온 아침. 그들은 아마 이 의거가 진행된 후 성공 여부를 떠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행사는 시작됐고, 9시쯤이 되자 박춘금이 연설을 위해 강단에 올랐다.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였다. 그 순간 폭탄은 굉음을 내며 행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다친 사람들의 비명 때문에 행사장 안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이후 조선총독부는 이들에게 큰 현상금까지 걸면서 잡아드리라 했으나, 이미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들의 의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광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친일파 박춘금을 처단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들은 해방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데도 스스로 나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나라 안팎에 떨쳤다.


국내의 마지막 항일 운동으로 기록된 이 사건에 어떤 수식도 필요치 않다고 느낀 것일까. 고은 시인은 <만인보>의 '유만수'란 시를 통해 당시 사건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하여 1945년 7월 24일

일제 마지막

그 간악한 마지막 친일 아시아민족분격대회 폭파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