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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나라 팔아 먹은 '매국노' 이완용이 죽기 직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

죽음을 앞둔 이완용은 아들에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듯하니 친미가 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인사이트한국학중앙연구원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열강 세력이 앞을 다투며 동아시아를 향해 달려오던 19세기 중반인 1858년 7월 17일,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이완용이 태어났다.


혼란의 시기에 태어났지만 정세를 파악하는데 능통했던 이완용은 '일본'에 조국을 팔아먹고 일생을 호의호식하며 보냈다.


1926년 2월 12일, 이완용은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67세의 일기를 마치며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식들에게 다급히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어라"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암살'


그의 유언대로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어떻게 이완용은 적재적소에 이런 비상한 판단이 가능했던 것일까. 


사실 이완용의 약력을 살펴보면 그가 왜 이러한 유언을 남겼는지 이해가 간다. 


이완용은 가난한 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나 권력가 집안에 입양되었고,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육영공원에서 신교육을 받으며 빠르게 진급했다.


과거에 급제한 후 그가 정 3품의 고위관료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년이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이완용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러시아, 미국, 일본 등 강대국들이 세력을 앞다투며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의 칼에 목숨을 잃고 나서 이완용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완용은 "조선 사람들이 미국같이 되기를 바란다"며 '친미'의 행보를 보였다.


친미의 행보를 보인것도 잠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자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을 앞두고 친일파로 노선을 바꾼다. 


인사이트tvN '어쩌다 어른'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조선의 상황은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바뀌었고, 이완용은 그 바람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옮겼다.


이완용이 러시아와 미국을 거쳐 친일파가 되기까지는 불과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일본이 득세하자, 이완용은 한일합병조약에 당당히 서명하며 자신의 조국 조선을 팔아넘겼다.


인사이트한일합병 조약 조인서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가 죽기 직전 남긴 유언은 그의 삶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말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처세술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조국까지 버리고 강한 세력만을 쫓아다녔던 매국노 이완용의 '삶'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결국 그의 유언은 지금에 이르러 외국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의 비참한 말로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