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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 받은 안중근에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남긴 마지막 편지

91년 전 오늘(15일)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서거한 날이다.

인사이트

(좌) 조마리아 여사 / 국가보훈처, (우) 안중근 의사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안중근에게 어머니는 살아 돌아오라는 말 대신 의로운 죽음을 받아들이라 말했다. 


91년 전 오늘(15일)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위암 투병 중 66세의 일기로 서거한 날이다.


1862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난 조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를 낳았다.


이들은 자라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에 부모 입장에선 한사코 말릴 수 도 있는 상황. 하지만 조 여사는 자식들의 결심을 지지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됐을 때 아들 안중근이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개설하자 조 여사는 의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여자라고 해서 독립운동에 동참하지 아니할 이유가 없었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안중근은 더 큰 일을 위해 집을 떠나기로 했다. 조 여사는 이때도 집안 걱정 하지 말고 "최후까지 싸워라"며 아들을 보냈다.


그렇게 안중근이 떠난지 3년이 지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거사가 벌어졌다. 이토 히로부미를 누군가가 총살했다는 것. 처단자는 아들 안중근이었다.


고국에 있던 조 여사도 평양 헌병대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은 조 여사를 겁박하며 안중근에 대해 물었다. 그럴 때마다 조 여사는 "아들은 진실한 애국자"라는 대답으로 모진 탄압을 이겨냈다.


인사이트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저격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듬해 2월 아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조 여사는 곧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죽으라. 그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생에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든 안중근은 항소를 하지 않고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한평생 독립운동에 힘썼던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속 깊은 인사였다.


인사이트 앞줄 왼쪽부터 유동하,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의사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후 조 여사는 남은 두 아들을 따라 연해주로 망명했다. 1922년 상하이에서 둘째 안정근과 함께 임시정부에 지내며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했다.


차마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감은 큰아들을 위해 조 여사는 더욱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조 여사는 상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전해진다.


암투병 중에도 나라만 생각했던 조 여사는 1927년 7월 15일 그토록 보고 싶었던 큰아들 곁으로 떠났다. 그의 나이 6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