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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은 일제에 맞서 '폭탄' 투척한 윤봉길 의사 탄생 110주년 입니다

110년 전 1908년 6월 21일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다.

인사이트백범 김구선생 앞에서 선서하는 윤봉길 의사 /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인사이트] 전현영 기자 =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1908년 6월 21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이 일제 치하에 있던 1926년 어느 날, 한글을 몰라 부모의 무덤을 찾지 못하는 청년을 본 윤봉길 의사는 농민의 무지가 나라를 잃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야학당을 개설하고 한글 교육을 하는 등 문맹을 퇴치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애썼다.


인사이트옥중사진(순국하기 마지막 사진) /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그러나 본격적으로 농촌부흥운동을 시작한 윤봉길 의사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완전한 독립 없이는 계몽운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봉길 의사는 더 큰 뜻을 마음에 품고 1930년 3월 6일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주로 길을 떠났다.


망명길에 오른 윤봉길 의사는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옥살이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참 동안 때를 기다려야 했다.


독립운동을 위한 인고의 시간 끝에 1931년 상해로 향한 윤봉길 의사는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된다.


인사이트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홍구공원의 모습 / 국가보훈처


이듬해 윤봉길 의사는 일왕 생일에 상해 홍구공원에서 축하식이 거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거사를 준비했다.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미가요가 울려 퍼진 순간, 윤봉길 의사는 수통형 폭탄을 일왕을 향해 던졌다.


일본 수뇌부를 향해 던진 폭탄에 일본의 시라카와 대장과 노무라 중장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 우에다 중장 등 여러 명이 크게 다쳤다.


거사를 끝낸 뒤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으로 자결을 시도했지만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했고, 그 자리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인사이트순국하시기전 목재 십자가 사형대에 묶여있는 모습 /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일본군에게 무참히 구타를 당하며 끌려가는 순간까지도 윤봉길 의사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전해졌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들의 가혹한 고문을 견뎌야 했고, 같은 해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돼 순국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묻는 질문에 윤봉길 의사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므로 하등의 남길 말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25살 젊은 나이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 그 숭고한 희생정신을 오늘 잠시나마 기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