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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할아버지 부끄러워 성씨 바꾸고 독립운동한 손자

을사오적의 손자는 가족의 친일행각을 속죄하기 위해 독립군이 됐다.

인사이트(좌) 을사늑약 / 국가보훈처, (우) 박제순 / 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을사늑약.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고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됐다.


조약에는 외무대신 박제순이 서명했다. 박제순은 이 일로 이완용 등과 함께 을사오적이라 불리게 된다.


어쨌거나 박제순은 이후 102년 전 오늘인 1916년 6월 20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평생 호의호식했다.


박제순에겐 친손자 한 명이 있었다. 이름은 박승유.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밀정'


일제 서슬이 퍼렇던 1924년 태어난 박승유는 스무 살이 된 1944년 일본군에 입대한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친일 관료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지시였다.


그러나 청년은 아버지와도, 할아버지와도 달랐다.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괴로워하던 박승유는 입대 한 달 만에 일본군에서 몰래 탈영한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광복군을 찾아가 독립군이 된다. 가족의 친일행각을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박승유는 이후 광복군에서 여러 공작 활동을 전개하고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장점을 살려 심리전 등으로 활약했다.


인사이트한국광복군 창설 기념사진 / 뉴스1


이 기간 박승유는 "할아버지는 대체 왜 자결하지 않으셨는가. 왜 후손들을 이다지도 욕되게 하는가"라며 박씨 성을 거부하고 가명을 쓰며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광복 이후 1963년 박승유는 광복군에서 활동한 공적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박승유에게는 오랫동안 친일파 일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박승유는 평생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시간이 흘러 1999년에서야 언론을 통해 을사오적의 후손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그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미 박승유가 사망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