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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고 재산 축적한 '최악의 친일파' 윤덕영의 초호화 저택

오늘 소개할 인물은 이완용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악랄한 친일 행적을 남긴 악질 친일파다.

인사이트(좌) 위키백과, (우) 온라인 커뮤니티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경술국치. 그렇게 조선은 나라를 잃었다.


일제의 야욕이 조선의 평화를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문명화'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며 식민지배의 명분을 내세우던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피탈하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 과정에는 일제에 협조하며 국권 피탈에 도움을 준 세력이 있었다.


을사오적이라고 불리는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을 필두로 한 '친일파'들이다.


일제의 주구(走狗)를 자처하며 조국을 팔아먹은 이들. 당시 친일파들은 그 대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친일파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은 이완용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 중에서도 악질 친일파가 많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이완용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악랄한 친일 행적을 남겼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일파. 윤덕영(1873~1940)이 그 주인공이다.


윤덕영은 동생 윤택영의 딸이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과 결혼하면서 황실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됐다.


조선 땅에서 일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윤덕영은 국권을 일제에 넘기고 식민지배를 받을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친일 행적을 시작했다.


윤덕영은 이완용 등 친일파 세력과 합세해 순종을 협박했고,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숨기자 억지로 빼앗아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는데 일조했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결국 윤덕영은 일제에 공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받았다. 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윤덕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대저택 '벽수산장(碧樹山莊)'이 바로 윤덕영의 소유였다. 대저택 아래로 보이는 민가들이 매우 초라하기만 하다.


대저택의 규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서촌'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옥인동 면적의 54%를 윤덕영이 소유했다.


총 대지 면적은 1만 6,000평, 저택의 크기만 따져도 800평에 육박했다. 건설하는데만 10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이렇게 부를 누리며 호의호식하던 윤덕영은 지난 1940년 10월 18일 사망했다. 벽수산장은 1960년대 중반까지 남아 있다 화재로 전소한 뒤 철거된 상태다.


이후 윤덕영이 소유하고 있던 땅은 국가에 귀속됐지만 그의 후손들이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지난 2005년 윤덕영의 증손자들은 '조상 땅 찾기'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패소했다.


윤덕영의 재산과 토지는 국가에 귀속됐지만 다른 친일파들의 재산은 여전히 환수하지 못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좌) 영화 '암살', (우) 위키백과


실제로 지난 4월 정부가 친일파 이해승 후손을 상대로 땅 소유권 민사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앞서 2004년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특별법,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국가귀속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는 본격적인 친일파 재산 환수에 착수했다.


하지만 친일파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 중 극히 일부만 환수됐으며, 그 과정에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를 팔고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먹은 친일파. 그리고 비열한 방식으로 축적한 재산. 끝까지,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