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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인데 감기약 처방해 21살 '홍 일병' 죽게한 군의관의 변명

민간 병원보다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군 의료 체계의 확실한 개선이 필요하다.

인사이트생전 건강했던 홍정기 일병의 모습 / SBS '8시 뉴스'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특급전사가 되고 싶다던 21살 아들이 입대 7개월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병명은 급성 백혈병. 심각한 뇌출혈로 급히 수술을 받았지만 이틀 만에 숨지고 말았다.


부모를 더욱 황당하게 한 건 군 내에서 아들을 살릴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는 점이다.


아들 홍정기 일병은 몇 번이고 의무실을 찾아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지만 군의관은 그저 '감기약' 하나 쥐여주며 이를 방치했다.


심지어 혈액암 가능성이 있다는 민간인 의사의 진단에도 상관은 군병원에 예약돼 있다며 홍 일병을 큰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결국 홍 일병이 쓰러지고 나서야 군은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때는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


인사이트생전 건강했던 홍정기 일병의 모습 / SBS '8시 뉴스'


21살 청년의 억울한 죽음이 SBS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군 의료 시스템의 부끄러운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실 홍 일병 사건 외에도 군내 의료사고는 그동안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위암 말기였던 병장은 군의관이 처방해준 위궤양약만 먹다가 전역 4개월 만에 사망했고, 군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던 일병은 과다 출혈로 숨졌다.


한번은 총상을 입은 김모 일병이 총탄 전문 의사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도 있었다.


군 병원만 갔다하면 초주검이 돼 돌아오니 아예 민간병원을 선택하는 현역 장병도 느는 추세다.


지난해 국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역병이 민간병원에서 진료받은 건수는 141만건으로, 2013년 103만건에 비해 40% 가까이 증가했다.


이제 군병원은 병사들 사이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안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신뢰받지 못한 존재가 됐다.


인사이트뉴스1


군 특성상 장병들은 훈련 과정에서 각종 총상, 자상, 골절상, 화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쉽게 노출된다.


그만큼 전문적인 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민간 병원보다도 훨씬 못하다. 


그 배경에는 고질적인 인력난이 자리한다. 지난해 2019~2020년도 군의관으로 복무할 자원을 뽑는 중견의요원 선발에서 국방부는 84명을 뽑을 계획이었으나, 실제 선발된 인원은 39명에 그쳤다.


그만큼 군의관에 지원하는 전문의 수련생들이 거의 없는 셈이다.


군의관들의 경험도 부족하고, 전공도 한정돼 있다보니 오진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홍 일병 사건에서 당시 진료를 맡았던 군의관은 "전공이 달라 백혈병 진단을 내려 본 적도 없었고, 검사 장비도 없어 판단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대한민국 군대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믿고 보낼 수 있을까.


인사이트뉴스1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 군병원에서 암수술을 받을 정도로 의료체계가 전문화 돼있고 수준도 높다.


대학병원에만 있을 법한 MRI 촬영 등 최신 의료장비들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8년 군 의료 예산은 2,100억원 대로, 전체 국방비 43조에 약 0.5% 수준에 그친다.


단 1%도 군장병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셈이다. 심지어 전방으로 가면 감기약, 파스 등 간단한 상비약조차 구비되지 않는 부대도 있다고 전해진다.


과감한 예산 편성으로 민간병원 수준만큼 군병원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투자하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인력과 좋은 기술로 군장병들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또 의료 체계가 구축되는 동안에는 민간 병원과의 활발한 연계가 병행돼야 한다. 홍 일병처럼 의무대와 군병원만 전전하다 목숨을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인사이트뉴스1


군인은 나라를 지킬 의무가 있고, 국가는 군인을 건강하게 집으로 돌려보낼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군인의 기본적인 건강권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방부는 직무유기다.


성능도 확실하지 않은 무기에 수조원을 퍼붓기 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통받는 장병들을 돌아보자.


이들의 건강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국방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