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향해 쏘지 말라" 5.18 발포 거부하다 고문으로 숨진 故 안병하 경찰국장

인사이트故 안병하 경찰국장 / 뉴스1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도망가는 시민을 쫓지 말라.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유의하라"


모두가 광주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을 때, 이를 거부한 단 한 사람이 있었다.


오늘(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기를 맞은 가운데, 끝까지 시민 편에 서다 고문으로 숨진 故 안병하 경찰국장이 시민들의 가슴을 울린다.


1980년 5월 광주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서는 시민들의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주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전두환 타도'를 외쳤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당시 신군부는 1600여명의 경찰관과 기동대를 투입하고, 광주 시민을 폭동세력으로 몰며 강경 진압을 명령한다.


심지어 시민을 향한 발포까지 지시했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그러나 전남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던 故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은 이를 거부하고 기동대에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의 총기도 회수했다. 안 국장에게 경찰이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자였다. 그 역할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가 남긴 비망록에는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다섯 가지의 데모 저지 방침이 적혀있다.


하나, 절대 희생자가 발생 않도록 (경찰의 희생자가 있더라도)


둘,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셋,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 (교내에서 연행금지)


넷, 경찰봉 사용 유의 (반말, 욕설 엄금)


다섯, 주동자 연행 시 지휘 보고 (식사 등 유지)


인사이트故 안병하 경찰국장이 남긴 비망록 / 뉴스1


안 국장의 지시에 따라 광주 경찰들은 계엄군에 부상당한 시민을 치료하고 끼니를 챙기는 등 '보호'에 앞섰다.


결국 안 국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나고 '직무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체포됐다.


그저 시민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안 국장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열흘간 모진 고문에 시달린다.


그 길로 경찰복을 벗어야 했던 안 국장은 고문 후유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10일 52세의 일기로 순직했다.


안 국장의 참된 죽음은 1992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동안 충주 진달래공원에 묻혀있던 안 국장의 유해는 2005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으며, 2006년이 되어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인사이트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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