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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전 오늘, 국회의원이 군 간부를 총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2년 4월 24일. 평화롭던 전남 순천에서 침묵을 깨는 총성이 울렸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쓰리데이즈'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1952년 4월 24일. 평화롭던 전남 순천에서 침묵을 깨는 총성이 울렸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국회의원 한 명 그리고 군 간부 한 명이 있었다. 총상을 입은 사람은 군 간부였고, 그는 사망했다.


다음 날인 4월 25일, 국회의원은 현역 육군 대위를 사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서민호 의원이었다. 국회 내무분과위원장이었던 서민호 의원은 현역 군 간부를 살해한 전무후무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그는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증인들도 그렇게 증언했고,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여론은 그의 편이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한국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사이트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촬영한 사진 / gettyimagesKorea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이 터진 후 국민방위군을 편성했는데, 고위층에서 물자를 빼돌려 수만명이 굶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소위 '국민방위군 사건'이라고 불렸고, 민심은 들끓었다.


그 민심에 불을 지핀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군이 경남 거창에서 "빨치산을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다.


'거창 양민학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국회는 정부와 군에 맞서 진상조사에 나섰다. 조사단까지 편성하며 적극적으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군은 수치스러운 사건의 진상이 모두 드러날까 두려워 방해 공작을 펼쳤다.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 발표로 합세했다.


인사이트거창 양민학살 사건 / 위키백과


당시 조사단장이 바로 서민호 의원이었다. 서민호 의원은 군과 정부의 표적이 됐고, 그를 미행하면서 행적을 조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전남 순천에서 시찰 등의 업무를 하던 서민호 의원은 자신을 미행하던 육군 대위와 마주하게 됐다.


그는 미행을 들킨 육군 대위와 시비가 붙었다. 대위는 재빨리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고, 이에 맞서 서민호 의원도 호신용 총을 꺼내 그를 겨냥해 사살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민호 의원은 끝까지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한동안 "정당방위다", "아니다"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GP506'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방위'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사실 서민호 의원의 사살 행위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정당방위라는 개념을 활성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계엄군재(戒嚴軍裁)는 정당방위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재심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받았다.


이후 서민호 의원은 4.19혁명으로 출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