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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맥주라 가능했다!" 한 번에 맥주 60병 마시던 친일파의 한 마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구한말부터 해방 직후까지 조선 팔도에 악명을 떨쳤던 희대의 친일파다.

인사이트(좌) 영화 '암살', (우) 위키백과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때는 1872년 5월 3일. 조선에서 진정한 친일파가 태어나는 날이었다.


그의 이름은 박중양.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구한말부터 해방 직후까지 조선 팔도에 악명을 떨쳤던 희대의 친일파다.


박중양은 똑똑하고 상황 판단이 매우 빠르기로 유명했다. 세상 물정을 잘 알았다.


이에 개화파에 기대를 걸며 조선을 계몽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일제의 주구(走狗)를 자처하며 친일 행각을 이어가던 박중양은 각 도지사 및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그는 평소 술을 좋아했다. 실제로 일본 맥주를 한 번에 60병을 마셨고, 소주를 40병까지 마신 일화가 유명하다.


인사이트위키백과


지난 1907년에는 박중양이 맥주 60병을 마신 일이 신문 기사로 보도되면서 '보리술 지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이로 인해 박중양은 조선 최고의 애주가이자 대음가로 유명해졌다. 그의 파렴치한 친일 행각이 가려질 정도였다.


박중양은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조롱, 비난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짓(독립운동)은 야만인보다도 못하다"


"이런 나라(조선)가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일본 제국의 신민이었던 자들이 3.1절 의식에서 떠들고 있는 것이 가소롭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좌) 영화 '군함도', (우) Twitter 'CJ Entertainment'


박중양의 망언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없이 많다. 이런 탓에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일본의 패망 이후 조선은 독립됐다. 하지만 박중양의 친일 사상과 행각은 그치지 않았다. 신념적 친일파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공공연하게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고, 이완용의 묘소에 테러하는 이들을 미개하다고 조롱했다.


지난 1949년 1월 8일,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대구 침산동 자택에서 수사관에 체포될 때까지 박중양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서울로 압송된 박중양을 조사하던 반민특위 수사관은 감탄했다. "아! 정말 뼛속까지 친일파구나!"라고.


인사이트박중양 풍자 삽화 / 온라인 커뮤니티


당시 조사관들의 목격담은 유명하다.


"그를 태운 자동차가 특위 정문 앞에서 멈추었다. 6척 거구의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모습이었다"


"그는 특위 정문을 보더니 '아, 고꼬가무까시노 다이이치긴꼬다네. 소! 소!(아, 이곳이 옛날의 제일은행이구나. 그래! 그래!)'라고 말했다"


끝까지 일본인 행세를 하던 박중양은 1959년 4월 23일, 87세의 나이까지 호의호식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참 오래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