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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수류탄을 던지자 엄마는 나를 자신의 배 밑에 숨겼다"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출석한 생존자들은 피해 상황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악몽같던 그날을 떠올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난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모의 법정인 '시민평화법정'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베트남 전쟁 때 74명이 숨진 퐁니·퐁넛 마을 사건과 135명이 희생된 하미 마을 사건이 다뤄졌다.


증인으로 출석한 '응우옌 티 탄'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생존자는 끔찍했던 당시 학살 장면에 대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퐁넛 마을에 살던 응우옌 씨는 "방공호에서 사람이 나오는 대로 한국군이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인사이트미군이 촬영한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기록사진


당시 그는 여덟 살. 총알이 박힌 동생의 목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고 자신의 상처 부위에서도 창자가 빠져나왔다.


가족을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했던 응우옌 씨는 "한국군이 차라리 나를 죽였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꽝남성 하미마을에서는 지난 1968년 2월 22일 해병대 청룡부대가 지나간 뒤 주민 135명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하미마을에 살던 당시 10살의 응우옌 씨는 한국군이 마을로 진입했을 때 방공호에 숨었다가 갑자기 날아든 수류탄에 가족을 잃었다.


응우옌 씨는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이 터지기 직전에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자신의 배 밑으로 깔아 넣어 살 수 있었다"면서 "다친 동생은 '엄마 죽었어요?'라고 소리치며 울고 있었다"고 울먹였다.


인사이트뉴스1


이 때 증언을 듣던 방청객들은 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고 통역사도 목이 메인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수류탄이 터져 왼쪽 하반신에 부상을 입고 한쪽 청력을 완전히 잃은 응우옌 씨는 그렇게 5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는 "제사 때마다 귀에 학살로 죽어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며 세상을 떠난 마을 주민 135명을 대표해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양현아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 꾸려진 재판부는 증인을 신문하고 증거 자료를 검토한 뒤 한국 정부의 학살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에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들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 게릴라전에서 의도치 않게 희생자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이트뉴스1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대부분 비무장 상태인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를 의도된 학살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피고인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까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고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에 대한 또 다른 살인이나 성폭력이 자행됐는지 조사하고 그 결과를 베트남전 참전 홍보 시설에 게시하라고 권고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된 지난 2000년 이후 '한국군에 의한 학살 피해자'가 인정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는 오는 하반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