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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남긴 반찬을 봉지에 비벼 먹던 노숙인 부부를 봤습니다"

사람들이 내어 놓은 잔반 그릇에서 음식물을 주워 먹는 노부부의 목격한 아버지는 자신의 식당 한켠에 작은 자리를 마련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줍는 노부부.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식당 한켠에 부부를 위한 자리를 내주었다.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우리 사회에도 '아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속깊은 이웃들이 있다.


서울에 사는 한 남성은 최근 아버지로부터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며 사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30대 중반, 너무 일찍 아내를 떠나보낸 아버지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며 홀로 자식을 키워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korea


아들 A씨는 근처에 있는 한약재 전문시장 약령시에 식사 배달을 자주 가는 아버지를 따라 일손을 거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A씨는 식당 주방 후문에 있는 마당에서 행색이 초라한 노부부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단골 손님도 아니었고 게다가 식당 안이 아닌 마당에서 식사를 하는 광경에 A씨는 아버지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노부부를 데려온 사람은 다름아닌 아버지. 그가 아버지에게 듣게 된 사연은 이랬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식사를 배달했던 약령시에 그릇을 수거하러 간 아버지는 우연히 노숙인들이 그릇에 남은 반찬들을 비닐봉지에 담아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남들이 먹다 남긴 반찬을 주워담은 노숙인들은 근처 식당에서 밥 한 공기를 사 비닐봉지에 넣고 이를 비벼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던 것이다.


노숙인들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약령시 상인들과 한의원 사람들은 일부러 밥 한 그릇을 더 시키거나 반찬을 많이 남겨 내놓는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한 노부부가 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보게됐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korea


마음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부부에게 "점심시간에 우리 식당에 오면 밥을 드릴테니 주워드시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 날부터 노부부는 매 점심시간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홀에 편히 앉아 식사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도 노부부는 "노인 냄새가 나 손님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비닐에 음식을 싸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A씨의 아버지는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를 따로 마련해 주방 뒤쪽 마당에 자리를 만들었고 노부부가 눈치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그렇게 가난한 노부부의 식사를 책임진 지 어언 한 달 하도고 보름. 지금도 아버지는 노부부를 기다리며 따뜻한 식탁을 차린다.


오랜 세월 혼자 식당을 운영하며 아내의 빈자리까지 홀로 채웠던 아버지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이웃에게 베푸는 법은 절대 잊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진 소박한 밥 한끼는 노부부의 주린 배를 채워줬을 뿐 아니라 헛헛한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주는 마음의 양식이었을 것이다.


최민주 기자 minjo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