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만에 허겁지겁 밥먹고 밤새 배달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 끊은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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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채널e'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명절을 앞두고 당장 출근하라는 압박을 받자 가족들 앞에서 '미치겠다'고 한 집배원. 결국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29일 EBS '지식채널e'에서는 '특별한 예외'라는 주제로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특례' 업종에 대해 조명했다.


그중에서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건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매일 새로운 소식을 우편으로 전해주던 한 집배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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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채 가시기 전, 아무도 없는 텅 빈 우체국에 한 남성이 들어선다. 그는 이곳을 담당하는 집배원이다.


그를 기다리는 건 하루 약 1천통이 넘는 우편물이다. 할당량을 모두 주민들에게 전달해야만 퇴근할 수 있다.


시간 내에 우편을 배달하기 위해 숨 가쁘게 뛰는 건 기본이다.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20분 만에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때로는 식사 자체를 걸러야 할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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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쉬는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집배원의 하루는 더욱 바빠진다.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집배량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연차가 있지만 자기가 쉬면 그 짐을 모두 동료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휴가를 쓸 수도 없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신발 밑창이 닳도록 달려야 하는 것이 집배원의 숙명이다.


17년 차 베테랑 故 이길연 씨도 그런 집배원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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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안전 장비인 헬멧 하나를 쓰고 오토바이로 골목을 누비던 그는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부상을 입었다.


병가를 냈지만 부종으로 퉁퉁 붓고 피가 가득 찬 왼쪽 다리는 쉽게 낫지 않았다.


그때 집배량이 폭주하는 추석을 앞두고 우체국으로부터 당장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쪽 다리로는 절대 배달을 할 수 없었다. 


이씨는 가족들 앞에서 '미치겠다'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 가족들도 미처 몰랐다.


업무 복귀를 앞두고 이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 하라네. 사람 취급 안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인사이트故 이길연 집배원 / 뉴스1


2017년 9월 세상을 떠난 이씨. 같은 해 4월에도 매일 12시간 일하던 한 집배원이 어린 두 딸을 남기고 과로사로 숨졌다.


전국집배노동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망한 집배원만 77명에 달한다.


집배원들은 '죽을 때까지 일하면 진짜 죽는다'고 호소한다.


전국집배노동조합 허소연 선전국장은 "살려고 일하는 거지 죽으려고 일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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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특례 업종'이라고 따로 분류된 직종이 있다. 업무 특성상 공공의 편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직업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집배원을 비롯해 간호사, 택배기사, 버스기사 등이 포함된다. 매달 과로사로 숨지는 특례업종 노동자는 전체 업종의 3배, 평균 3.6명이다.


그만큼 이들은 끝없는 노동에 시달린다. 


다행히 올해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26개였던 특례업종이 5개로 축소됐다. 집배원과 노선버스 운전기사 등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여전히 간호사, 택배기사, 화물차 운전자 등은 '특별한 예외'로 남아있다.


아울러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직업군 역시 인력 충원이 되지 않는 한 살인적 노동에 노출되는 건 매한가지다.


'공공'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들의 기본적인 삶을 희생시키는 특례업종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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