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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혀 몰랐던 '최고의 왕' 세종대왕 일화 10가지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4대 군주 세종대왕. 애민 정신이 담긴 훈민정음 창제 외에도 세종이 했던 다양한 업적과 그의 색다른 면모를 알아보자.

인사이트KBS 1TV '역사저널 그날'


[인사이트] 최민주 기자 = 양력 3월 30일인 오늘은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날이다.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간 정통 사극부터 각색된 퓨전 사극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만큼 세종대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고 알려진 세종대왕.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 중에는 우리가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세종대왕의 소소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 악기 연주를 잘했다


인사이트KBS2 '구르미 그린 달빛'


셋째 아들로 태어난 세종대왕은 왕위와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 태종은 열일곱 살이 된 그에게 "너는 세자가 아니어서 따로 할 일이 없으니,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라며 여러 악기를 하사했다.


이때부터 세종대왕은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에 몰입해 형들을 가르칠 수준까지 이르렀다.


실록에는 '악기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사이가 틀어졌던 세종대왕과 양녕대군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2. 못 말리는 고기 덕후였다


인사이트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좋아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향을 가진 세종은 평생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으로 고생했다.


아버지 태종이 세종의 즉위 후 '운동'을 권할 정도였으나 고기반찬이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삼년상 중에는 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아들이 고기를 먹지 못해 몸이 상할 것을 염려한 태종은 "세종에게 고기반찬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효자였던 세종대왕은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으나 그 때문에 입맛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신하들이 "고기를 드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3.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


인사이트KBS2 '대왕 세종'


세종대왕은 90세가 넘은 노비에게 장수의 의미로 쌀 약 288kg을 제공하도록 명했다.


또 노인들을 위해 베푸는 잔치인 '양로연'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모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노인 뿐 아니라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정책도 펼쳤다. 의료 기관인 '제생원'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입양을 돕도록 명했다.


4. 장애인 지원 정책을 폈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세종대왕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시각장애인 중 신분이 천민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도록 명했다.


또한 장애인 단체에 노비와 쌀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장애인들의 직업훈련이 크게 활성화될 수 있었다.


5. 출산 휴가제를 도입했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세종대왕은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이 임신하자 출산 전 한 달의 휴가를 부여해 만삭의 몸으로 일하지 않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는 100일의 출산휴가를 제정했다. 그만큼 세종은 시대를 앞선 왕이었다.


남자 노비에게도 부인이 아이를 낳으면 30일간의 휴가를 받아 육아를 도울 것을 명했다.


6. 흉년이 들자 초가 생활을 했다


인사이트Instagram 'thdgml0819'


조선에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세종대왕은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다.


세종대왕은 경회루 동쪽에 백성들의 집과 똑같은 작은 초가집을 지어 무려 2년간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를 염려한 신하들이 세종대왕 몰래 초가집 바닥에 짚더미를 넣었는데, 이를 알고 크게 꾸짖었다.


7. 오랜기간 눈병을 앓았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세종대왕은 안질(눈이 아프면선 눈곱이 끼는 병)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시력이 손상됐다.


세종실록 92권에는 "내가 눈병을 얻은 지 이제 10년이나 됐으므로"라는 문구가 기록돼 있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32년 가운데 20여 년 동안 시각에 장애를 느꼈고 임종하기 전 8년 동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했다.


7. 부인을 위해 분만실을 만들었다


인사이트MBC '퐁당퐁당 LOVE'


세종대왕은 즉위 후 장인인 심온을 숙청하게 되며 부인 소헌왕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후 부인 소헌왕후가 임신을 하자 경복궁에 '건강하게 순산하길 바란다'는 뜻의 '건순각'이라는 분만실을 선물했다.


9. 백성들에게 왕가의 토지를 나눠줬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연이은 흉년으로 곳곳에서 백성들의 곡소리가 들리자 세종대왕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수양대군을 포함한 모든 대군이 소유한 토지를 대폭 줄였고, 이 토지를 저렴한 값에 백성들에게 빌려주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장려했다.


10. 민심을 알기 위해 투표를 했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현재의 선거나 투표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직접 민심을 확인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세종대왕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지역별로 관리를 파견해 약 5개월 동안 백성들을 상대로 투표를 실시했다.


토지법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니만큼 백성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려는 세종대왕의 애민 정책이었다.


최민주 기자 minjo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