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작사자 '미상'이었던 애국가, 도산 안창호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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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줄곧 국가(國歌)로서의 역할을 해온 애국가.


100년이 넘도록 불러온 애국가의 작곡가는 안익태로 알려졌지만 작사가는 여전히 '미상'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가운데 애국가 작사가를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학계의 관심을 모은다.


최근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학술원 통신' 제297호에 실린 글 '애국가 작사는 누구의 작품인가'를 통해 애국가 작사 안창호설을 천명했다.


신 교수는 각종 사료와 증언, 도산이 남긴 글 등을 바탕으로 애국가 가사와 도산의 시상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인사이트도산 안창호 / 연합뉴스 


신 교수가 제시한 증거는 도산이 남긴 20여 편의 애국 계몽가사다.


그는 '한양가', '조국의 영광', '대한청년 학도들아', '거국가' 등의 가사를 애국가 가사와 비교해 그 유사성을 찾아냈다.


애국가 2절 가사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는 한양가 1절 "남산 위에 송백들은 사시로 푸르다"와 비슷하다.


'조국의 영광' 가사 "송백의 푸른 빛은 창창하고/ 소년의 기상은 늠름하도다"와는 사상면에서 일맥상통한다. 


애국가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는 도산이 지은 가사 "가을 하늘 반공 중에/ 높이 빛난 명월인듯", "대한청년 학도들아 동포 형제 사랑하고/ 우리들의 일편담심 독립하기 맹세하세"와 흡사하다.


신 교수는 애국가 1절에 대해서도 도산이 지은 "동해에 돌출한 나의 한반도야", "우리 황조 단군께서 태백산에 강림하사/ 나라집을 건설하여 자손 우리에게 전하셨네" 등과 동일한 시상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인사이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직후 도산 안창호(앞줄 가운데)의 모습 / 연합뉴스(신용하 교수 제공)


무엇보다 신 교수는 "구한말 다른 어떤 사람의 애국 계몽가사에도 애국가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없다"며 안창호 작사설에 무게를 뒀다.


특히 애국가 작사가로 추정된 또 다른 인물 윤치호에 대해선 "윤치호는 황실을 존중하고자 했기에 애국가 가사를 지었을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국민, 민주주의, 애국을 역설한 도산이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애국가 가사를 썼을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다만 후렴구는 작자를 알 수 없는 무궁화가에서 차용했을 것으로 신 교수는 보고 있다.


인사이트윤치호와 윤치호 친필 추정 애국가 / 연합뉴스 


그동안 역사학계는 애국가 작사가를 두고 도산 안창호냐 좌옹 윤치호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윤치호가 역술한 1908년 작품집 '찬미가'에 수록된 15곡의 가사 중 일부가 애국가 가사와 거의 같다며 윤치호를 작사가로 봤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역술은 번역해서 썼다는 의미로, 찬미가 가사는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 대부분"이라며 "윤치호 본인이 썼다는 표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논평을 통해 신 교수는 "내년 삼일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애국가 작사자를 '미상'에서 '안창호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규정 기자 kyoo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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