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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적장의 '수청'을 단칼에 거절한 조선 여인이 단 한 명 있었다

당시 조선 땅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일본군은 조선 여인 약 5만 명을 납치했다.

인사이트(좌) 도쿠가와 이에야스 / 온라인 커뮤니티, (우)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채널A '어메이징 스토리'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조선 선조 25년(1592년), 일본은 조선에 침입해 5만 송이의 꽃을 꺾어 갔다.


당시 조선 땅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일본군은 조선 여인 약 5만 명을 납치했다.


그중에는 어떤 칼로 베어도 절대 꺾이지 않는 꽃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오타 주리아(おたあ ジュリア).


'오타'는 성씨요, '주리아'는 천주교 세례명이다. 그의 출생년도나 실명 등 배경 정보는 일체 알려진 바 없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평양 부근에서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부모는 전투 중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명량'


인질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간 오타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일본인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맡겨져 양녀로 입양된다.


다행히도 좋은 집안으로 입양돼 양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으며, 특히나 고니시 부인은 오타에게 직접 교육할 정도로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던 중 양아버지인 고니시가 전쟁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때 고니시의 양딸이었던 오타에게 눈독을 들인 자가 있었다. 바로 일본의 3대 천하인으로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 역사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며 일본을 통일해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에도 막부를 창건한 주인공이다.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서 온 여인 오타의 미모에 매료된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명량'


이후 도쿠가와는 오타를 슨푸성으로 불러들여 시녀로 삼았다.


신앙심이 깊었던 오타는 밤마다 기도를 빼놓지 않았고, 성서를 가까이하며 다른 시녀들과 가신들에게 신앙을 전파했다. 자연스럽게 오타를 따르는 자들도 생겨나게 됐다.


그랬던 오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막부의 종교 탄압 정책에 따라 배교를 강요당한 것이다.


오타는 이를 거부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도 거절했다.


이때부터 성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게 됐는데, 작은 시골 마을을 떠돌면서도 가는 곳마다 환자를 간호하고 봉사를 하는 등 선교 활동을 끊이지 않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타를 잊지 못했다. 이에 도쿠가와는 오타의 죄를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수청을 들라고 명했으나 단칼에 거절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서울시


결국 오타는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의 말년 행적에 대한 기록은 뚜렷하지 않지만 이곳저곳 유배 생활을 이어가던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세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톨릭을 믿는 재일교포들은 그의 행동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다.


또한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 최고 적장의 수청을 단칼에 거절한 단 한 명의 조선 여인이라는 것을.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