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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백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며느리'의 비밀이 있었다

성군 세종대왕에게도 말 못 할 고민과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있었다.

인사이트(좌) SBS '뿌리깊은 나무', (우) 채널A '천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 되는 해다.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한 후 6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성군으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 그리고 위대한 업적.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를 창제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업적이자 애민정신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임금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였던 세종대왕은 한 여성의 남편으로도 훌륭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다. 지성을 갖춘 세종의 비 소헌왕후 역시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만백성의 어버이로 불렸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그늘이 없을 것만 같은 세종대왕.


그런데 단 한 가지, 절대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있었다. 며느리 복이 없었다.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에게는 첫 번째 부인인 휘빈 김씨가 있었다. 그러나 문종은 휘빈 김씨를 멀리했고, 휘빈 김씨는 주술을 통해 문종의 마음을 돌리려다 궁에서 쫓겨나게 됐다.


이후 두 번째 부인을 맞았는데, 바로 순빈 봉씨였다.


인사이트채널A '천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소헌왕후는 순빈 봉씨가 두 번째로 맞은 세자빈인 만큼 신중히 간택했고, 직접 상궁을 지정해 '열녀전'을 가르치게 할 정도로 심성을 기르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순빈 봉씨는 조선 팔도를 뒤흔든 역사상 최대 스캔들을 일으키고 말았다. 문종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궁녀에게 애정을 쏟은 것이다.   


순빈 봉씨는 궁녀 소쌍(召雙)과 잠자리를 함께하며 동성애에 빠졌다.


여전히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순빈 봉씨가 원래 동성애적 정체성을 지녔었는지, 문종에게 관심을 받지 못해 욕구불만으로 궁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는지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인사이트SBS '뿌리깊은 나무'


다만 궁녀와 동침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순빈 봉씨의 소문이 궁 안에 퍼지자 문종이 직접 소쌍에게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은 크게 분노했고, 순빈 봉씨는 폐서인이 돼 궁에서 쫓겨나게 됐다.


결국 세종대왕은 며느리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승휘 권씨를 세 번째 세자빈으로 책봉했다. 


백성을 가장 사랑했던 지도자 '세종대왕'의 감동 명언 7세종대왕이 남겼던 명언들은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국에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대왕' 일화 10가지한글날, 백성 사랑이 남달랐던 세종의 일화를 알아보자.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