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서울
  • 15 15℃ 인천
  • 13 13℃ 춘천
  • 10 10℃ 강릉
  • 15 15℃ 수원
  • 17 17℃ 청주
  • 17 17℃ 대전
  • 13 13℃ 전주
  • 17 17℃ 광주
  • 16 16℃ 대구
  • 15 15℃ 부산
  • 16 16℃ 제주

"오늘은 우리 국민 10만명을 구한 '흥남 철수 작전'이 진행된 날입니다"

26만 중공군의 '인해 전술'과 혹독한 추위에 견디지 못한 연합군은 12월 15일 흥남 철수 작전을 시작했다.

인사이트위키백과


[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전쟁의 포화 소리가 한반도를 뒤덮었던 지난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국군과 미군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데 이어 북괴군을 줄줄이 쳐부수고 압록강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중공군이 개입하며 전세는 또다시 뒤집어졌다.


26만 중공군의 '인해 전술'과 혹독한 추위에 견디지 못한 연합군이 결국 같은 해 12월 8일 흥남 철수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인사이트온라인 커뮤니티


이어 일주일 뒤인 12월 15일 미국 1해병사단을 필두로 24일까지 열흘간의 철수 작전이 시작됐다.


문제는 해당 철수 작전이 군 장병들 위주로 이뤄질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 흥남으로 달려온 수만 명의 북한 피난민을 버릴 수 없었던 김백일 당시 1군단장 등은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에 애초 "대규모의 시민을 군함에 태워 탈출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던 미군 관계자들도 결국 모두 함께 철수하는 데 동의하게 됐다.


인사이트위키백과


또 군함에 모든 피난민을 태울 수 없는 상황에서 흥남 철수 당시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상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선장의 결단에 따라 실었던 무기를 전부 버리고 대신 피난민 1만 4천여명을 태워 남쪽으로 철수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흥남 철수 작전에서는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의 장병 10만명을 비롯해 차량 1만 7천대, 피난민 약 10만명, 35만t의 군수품이 안전하게 동해상으로 철수됐다.


당시 전쟁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실제 흥남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현대전에서 가장 성공한 양대 철수작전으로 불린다.


한편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 명의 인명을 구한 영웅 6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美 종군사진작가가 기록한 한국전쟁 현장 사진 5장올해 100세가 된 20세기 대표 전쟁사진작가 데이비드 던컨이 포착한 한국전쟁 장면들이 재조명됐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