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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지켜준 힘"…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지극한 태극기 사랑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30여년째 대문에 태극기를 내걸며 지극한 태극기 사랑을 보여줘 눈길을 끌고 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펄럭거리는 허름한 집이 한 채 있다. 충북 유일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대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열여섯 살 나던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가 2년 넘게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했다. 가녀린 소녀가 일본군의 총칼 앞에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것조차 지켜주지 못한 조국이지만, 그녀의 태극기 사랑은 남다르다.


"일본 패망 뒤 중국사람 도움을 받아 천신만고 끝에 조국에 돌아왔어.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갈 곳이 없었지. 나라가 힘을 잃는 바람에 내 인생도 송두리째 망가진거야"


인사이트연합뉴스


주변의 눈을 피해 속리산으로 흘러든 그녀는 남의집 살이와 식당 허드렛 일을 하면서 고독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끔찍했던 위안소 생활의 악몽은 머릿속 깊숙이 똬리 틀고 앉아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마음씨 좋은 홀아비를 만나 결혼했지만, 병들고 지친 몸은 평범한 여자의 삶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고열과 함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와 일상생활이 힘들었고, 독한 약을 입에 달고 사는 바람에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손톱이 빠지는 고통까지 경험했다. 결혼 20여년이 넘도록 아이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위로처럼 다가선 것은 뜻밖에도 태극기였다.


인사이트서울대 인권센터 


어느 날 기력 잃은 몸으로 길을 걷다가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나라가 건재하고 내 눈앞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는 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섰는지 모른다.


"태극기를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울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지. 아마도 당시 상황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날의 감동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았고, 한참 뒤 남편과 사별해 다시 혈혈단신이 되면서 아침마다 대문 기둥에 태극기를 내걸기 시작했다. 벌써 30여년 전이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처음 10여년 동안은 동틀 무렵 태극기를 게양하고, 해지기 전 깨끗이 접어 머리맡에 '모셔두는' 일을 반복할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태극기를 챙겼다. 태극기 앞에 두 손 모으고 앉아 나라가 부강해져 다시는 자신 같은 불행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요즘 국경일조차 태극기를 내거는 집이 드물어진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여서 조국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크고 든든한지 잘 알지 못하는 거 게야. 그러다 보니 나라의 가치와 소중함까지 가볍게 생각하는 거지"


인사이트서울대 인권센터 


이 할머니는 요즘도 틈이 날 때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 근처 암자에 찾아가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한다.


몇 해 전에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금과 위안부 생활안정지원금으로 모은 2천만원을 보은군민장학회에 내놓기도 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인재육성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90살 고령의 나이에 '위안부' 해외증언 나서는 이옥선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실태를 알리기 위해 팔 벗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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