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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왜 시신훼손 부모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나

최근 부천의 한 부부가 초등생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음에도 경찰이 이들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흉악 범죄 얼굴 공개의 기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고 있다.

 

강호순, 김길태, 오원춘, 박춘풍, 김상훈. 

 

이들의 공통점은 '얼굴'이 공개된 흉악범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범죄 피의자의 얼굴 공개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저질렀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알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차원에서 할 수 있다'는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도저히 상상할수도, 납득하려야 할수도 없는 '아들 시신 훼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는데도 경찰은 이들의 얼굴을 꽁꽁 싸맨채 현장검증 장소로 나왔다.

 

아빠가 아들을 권투하듯 때렸고 다음날 아들은 컴퓨터 앞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사망했다. 그리고 부부는 아들의 시신 일부를 냉장고에 보관한 채 태연히 딸을 키웠다.

 

이전까지 알려진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차원의 듣도보도 못한 사건이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있었을 뿐 아니라 죄의 증거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사건을 담당한 원미경찰서는 '딸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호순도 세 아이의 '아빠'였다.

 

  

물론 이들 부부는 앞선 연쇄살인마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의 의미가 연쇄살인마보다 가볍지 않다. 방법도 잔혹하고 엽기적일 뿐 아니라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살인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심각한 아동학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에 발표된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동안 1만건이 넘는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중 80%는 부모가 가해자였다.  


전국에서 매해 8천명이 넘는 아동이(파악된 것만) 부모에 의해 학대 당하고 심한 경우에는 죽임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강력한 처벌이 곧 문제의 방지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의 얼굴을 공개하고 엄격히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라는 범죄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지속적으로 줄 수 있다. 



인권 개념이 한국보다 훨씬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아동학대 범죄자에 관해서는 훨씬 무거운 기준을 적용한다.

흉악범죄의 경우 수사단계서부터 얼굴 공개는 기본이다.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미국에서는 수백년 징역의 형량을 선고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는 것이다.

 

법이 아동학대를 중히 벌하는 만큼 미국 시민들의 의식도 투철하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아동을 폭행하면 이웃들이 망설임 없이 경찰에 신고한다. 

 

여기에는 아동을 그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개별 인격체'로 보는 문화가 있고 아동들을 사회가 보호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어서다.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남의 집 가정사에는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출생신고를 전적으로 맡기는 등 법적 보호 장치도 미비하다.

 

최근 있었던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을 계기로 무의식 중에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문화가 개선되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얼굴 공개는 기본이다. 아동학대는 그 존재 만으로도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흉악범죄라는 것을 공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를 냉동실에 넣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며 살 수 있었던 흉악범죄자들의 얼굴을 보호하기에는 소리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전국 8천명의 아동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