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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아동학대', 왜 끊이지 않고 일어날까요?

연약한 아이를 대상으로 '집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지만 요즘 같아서는 유달리 한국에서 부모의 끔찍한 아동학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학대를 일삼는 부모들과,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다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

 

최근 쉴새 없이 쏟아지는 비보(悲報)에 가슴이 아프지 않은 날이 드물다. 

 

부모가 연약한 아이를 대상으로 '집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지만 요즘 같아서는 유달리 한국에서 부모의 끔찍한 아동학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끔찍할 정도의 사건이 반복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신생아 매매가 가능할 정도로 허술한 한국의 제도'에서부터 아동학대가 일어난다고 본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의 출생신고는 부모에게 일임돼 있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법의 테두리 바깥에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악용한 이들이 신생아를 국가에 신고하지 않고 매매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출생신고는 아동 인권을 지키기 위한 출발점이기에 선진국에서는 병원과 같은 아이 출생기관에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아이의 운명이 부모의 손에 전적으로 달리기 전에 사회가 제도적으로 아이의 일생에 개입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허술함이야 공론화를 통해 보완하면 되는 문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는 이런 제도적 허술함을 낳게 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있다.

 

바로 아이는 '부모의 소유'라는 인식이다.

 

식당에서 아이가 떠들고 시끄럽게 뛰어다녀도 사람들은 그 아이를 훈계하기 어렵다.

 

곧장 해당 아이의 부모로부터 "당신이 뭔데 내 아이에게 뭐라고 하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상황에도 똑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부모가 아이를 심하게 매질하고 혼내도 주위에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남의 집안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이의 양육은 전적으로 부모 마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가 집안 일에 개입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집안에서 벌어지는 아동 학대의 책임이 사회와 국가에도 있음을 통감하고 제도적 보완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는 병원의 출생 신고 의무화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도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지난 1월,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배관을 타고 내려와 슈퍼마켓을 기웃거리던 한 소녀도 그 아이의 행색을 눈여겨 본 슈퍼마켓 주인의 신고로 새 삶을 얻었다.

 

더이상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전적으로 부모의 처분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공동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최근 원영이를 살해한 계모, 자신의 딸을 산에 암매장한 엄마는 하나같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때렸다"고 말했다.

 

이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처벌해도 된다는 보편적인 인식에 호소하는 변명이다.

 

사실 말을 안 듣는 아이를 부모가 상식 선에서 혼내고 훈육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도 인격이 있고 인간으로서 보호 받아야 할 존엄성이 있다. 부모라고 해도 이런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된다.

 

외국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너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한다. 자식은 자신이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닌 자신과 이 세상에서 만난, 별개의 인격체라는 인식 속에서 나오는 말이다. 

 

한국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는 날이 오면 아동 학대 문제는 훨씬 더 많이 개선될 것이다.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