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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 식당, 일본엔 있고 한국엔 없는 이유

일본은 100년이 넘는 가게가 1만여 곳이 넘는 반면 한국에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완연한 봄날씨에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벚꽃을 뒤로 하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을 찾았다.

 

'이문 설렁탕'. 종각에서 인사동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식당은 1904년에 개업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버텨준 고마운 식당이다.

 

"여기 설렁탕 한 그릇이요" 한 마디면 몇 분도 채 안 돼 곧바로 식탁에는 뜨끈한 김이 모락 올라오는 설렁탕 한 그릇이 올라온다. 내부 인테리어나 메뉴 뭐 하나 특별한 점은 없지만 계속해서 손님이 들어온다.

 

예전 어르신들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삶의 고단함을 녹여냈다. 가슴 아픈 탄압의 시기도 고된 노동의 순간들도 시원한 국물 한 모금에 후루룩 씻어냈다.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식당)'로 불리는 식당들이 있다. 앞서 거론한 이문설렁탕을 비롯해 80년 전통의 청진옥과 용금옥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옛 향수에 젖어 발걸음을 재촉하는 어르신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찾아오는 어린 학생들로 그 명성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한류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 여행자들 사이에 한국 음식을 맛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이문설렁탕이나 청진옥처럼 오래된 전통식당을 기대하고 한식당을 찾는다.

 


 

그런데 정작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다. '대장금'을 보며 기대했던 '한식'을 한국에서는 제대로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울의 유명 번화가에서 제대로 된 한식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푸념한다. 실제로 맛집 검색 어플에 따르면 홍대 상권에 이자카야만 113곳에 달하는 반면 한식 중심의 주점은 3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 '일식'이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일본가정식'과 같은 메뉴를 내세워 식당문을 열고 있다. 홍대나 강남 등에는 이미 일본어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일식집들이 즐비하다. 삼겹살, 갈비 등 한식이 자리하던 곳에는 이제 낯선 '야끼니꾸'와 '벤또' 등이 대신하고 있다.

 

한식을 찾던 여행자들은 한국의 번화가를 걸으면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Instagram 'dahee_vv'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100년이 넘는 가게가 무려 1만여 곳이 넘는다. 메밀국수집 '오와리야'는 600년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으며, 효테이와 초밥집 이요마타는 400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전통 있는 식당들은 일본을 찾는 외국인들이 즐겨가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이토록 많은 노포가 있는 데에는 장인문화와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 했다. 도쿠가와 시대의 사무라이 가족 형태는 돈독한 '스승-제자'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으며, 이는 일본에서 기술을 계승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반면 일본과는 달리 한국이 이러한 문화를 정착시킬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의 노포 '오와리야' / Instagram 'suah222'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등 혼란의 시기를 겪어온 탓에 오래도록 식당이 그 명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더불어 고속 성장을 강조했던 우리나라에서 식당일은 '천한 일'로 치부됐다.

 

때문에 부모님 세대들은 고된 식당일을 자식에게 넘겨주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급속히 진행된 도시 재개발은 식당 주인들을 다른 곳으로 내몰았다. 또 매출이 상승하면 자연히 임대료를 올리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며 요식업 종사자들의 한숨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실제로 이문설렁탕을 비롯해 청진옥 등은 원래 있던 자리를 재개발에 등떠밀려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제는 이 식당에서 예전 가옥에서 풍겨오는 고즈넉한 분위기보다는 싸늘한 현대식 식당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연합뉴스

 

이러한 선입견과 사회적 분위기에도 우리가 노포를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우리가 '노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식탁에 우리 아버지 세대, 더 나아가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는 분명 전통과 문화가 살아숨쉬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역사의 한 순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식당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우선 국내의 노포들을 전통 문화와 같이 보존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재개발 혹은 건물주로부터의 횡포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그 맛과 명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가 이어져야 한다.

 

또한 맛의 비법이나 운영 방식 등 노하우들을 계승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인식 재고과 계승 프로그램 개설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끝으로 일본처럼 500~600년이 훌쩍 넘는 전통의 식당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하고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말도 오랜 단골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언제가도 변함없는 맛과 풍경,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노포는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