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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 써오라는 요즘 담임교사들

최근 일부 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의 초안을 작성해 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사이트박명수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가 최근 화제를 모았다. MBC '무한도전'


[인사이트] 문지영 기자 = 얼마 전 개그맨 박명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 생활기록부에는 '고자질이 심함, 나태함, 지능이 떨어짐'이라고 적혔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라고 말해 폭소케 했다.

 

박명수는 개그 소재로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만천하에 공개했지만 사실 이 에피소드는 생활기록부가 대입 성공을 위한 '수단'이 된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원래 '생활기록부'란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기록해두는 문서다. 박명수의 그것처럼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기록인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 대입에서 생활기록부의 비중이 커지면서 요즘 고등학생들은 사실상 '자기 손'으로 직접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다.


인사이트SBS '모닝와이드'


실제로 일부 고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1학년 때부터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독서활동 등의 초안을 '교사의 문체'로 작성해 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넣기 위해 필히 '과대 포장된' 초안을 써 낸다. 심지어는 생활기록부 작성을 돕는 컨설팅 업체까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 사이에서 '생활기록부를 내가 작성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뒤틀린 현상에 대해 큰 비판의식을 갖지 못하는 셈이다.

 

선생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생활기록부가 대입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칫 잘못(?) 기재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들어와 초안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는 칭찬으로 가득차고 학생 간 변별력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인사이트대입 당락에서 '생활기록부'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합뉴스


이러한 '셀프 생활기록부' 사태의 근본 원인은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라는 대입 수시제도에 있다.

 

2007년 도입된 학종은 학생의 '내신성적'과 함께 학내 동아리, 봉사활동, 행사 등에 대한 참여도가 반영된 '생활기록부'로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전형이다.

 

2017년 대입 수시모집에서는 학종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확대됐지만, 제도 도입 후 9년이 지나도록 '셀프 생활기록부'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러한 탓에 얼마 전 교육부는 수시철을 맞아 부랴부랴 '교수학습 평가지원팀'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생활기록부 작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생활기록부 작성에 관여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사태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인사이트교육부의 임시방편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연합뉴스


사실 학종은 고교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분명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 컨설팅 업체까지 합작해 작성하는 '가짜 생활기록부'가 전형의 공정한 심사 기준이 될 리 없다.


전문 인재양성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학종을 마구잡이로 확대할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스토리'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도록 교육당국 차원의 고교 감시가 먼저 강화돼야 한다.


또한 생활기록부를 평가하는 대학 내 입학사정관들을 충분히 확충하고 이들에게 심사 기준을 철저히 교육한 후 제도를 확대해도 늦지 않다.


인사이트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학생들과 교사들은 마음이 무겁다. 연합뉴스


수능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고교 현장에서는 생활기록부와 씨름 중이다.


학벌이 벼슬인 '슬픈 땅'에서 대입 전형은 늘 논란거리지만 고등학생들이 언제까지 온전치 못한 '제도'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인지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